시민사회란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가진 시민들의 ‘사회집단’ ‘조직된 결사체’들이 자신의 이익과 열정을 증진하기 위해 ‘갈등’하고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을 말한다. 즉 공적 권력이 행사되는 국가와 가족·기업 같은 사적 생산단위와 구별되는 중간지대를 일컫는 것이지, 원자화된 ‘개인’들의 ‘중립지대’가 아니다.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를 이야기할 때 ‘이익’ ‘조직’ 혹은 ‘집단’ 이들 간 ‘갈등’의 의미가 취약해졌다. 1987년 이전엔 ‘시민사회’를 권위주의적 ‘국가’와 대립하는 민주적·민중적 운동의 장으로서 이해했다. 민주화
‘거세’(去勢)라는 말에는 인간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을 제거한다는 뜻도 들어있다. 거세라는 말 대신 ‘중성화’(中性化)나 ‘무성화’(無性花)라고도 한다. 표현은 다르더라도 그 뜻의 핵심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는 힘, 즉 생명력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최근 공무원과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와 관련된 국제기준과 해외사례를 살펴보면서 대한민국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교할수록 생각나는 개념이 정치적 거세 혹은 정치적 중성화다.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공무원과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지난 24일 한 모바일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페미 논란’에 휩싸였다. ‘페미 논란’이란, ‘페미니스트일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로 보이는 여러 정황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해당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해 ‘페미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일부 커뮤니티의 게시글에 따르면) ①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혜화역 시위 등 젠더 이슈에 관련된 해쉬태그를 올린 트위터리안 몇이 해당 일러스트레이터를 태그했고(일러스트레이터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② ‘여자들의 잇템’이라는 게시글에 ‘좋아요’ 표시를 했으며
대한노총은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연맹(이하 ‘독청’이라 함) 활동을 통해 성립됐다. 이 때문에 대한노총의 성립과 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청의 성립배경과 성격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청은 1945년 12월21일 좌익청년단체 통합체인 ‘조선민주청년동맹’이 결성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익정치세력이 주도해 결성한 조직이다. 특히 ‘신탁통치’ 문제로 국론이 양분되자 반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한 우익정치단체인데 독청의 강령은 당시 8·15 이후 전 민족적 요구였던 일제와 그 잔존세력인 친일파 척결 등의 구체적 요구가 결여된 추
불혹을 넘긴 동생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직종으로 옮겼을 때 나는 걱정했다. 동생은 젊어서부터 식품유통업을 20년 넘게 했지만, 본사와 거래처 사이에 끼여 오래 고생했다. 원인은 대기업 횡포였다.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선 GM이나 인텔 같은 자동차회사·전자회사가 식품유통에 뛰어들면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CJ나 LG, 현대 같은 대기업이 식품유통을 다 장악했다. 한국은 학교 급식에 납품할 부식을 자동차나 냉장고 만드는 회사가 독점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본사의 물량 떠넘기기와 거래처의 외상깔기에 시달리던 동생은 어느 날 일
산업안전보건법에 지난해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관할지역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생겼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해는 5월 기준 전국 15개의 광역지자체와 10여곳 남짓한 기초지자체에서 산재예방 및 노동 안전보건 증진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7월 현재는 대부분 광역지자체와 120여개 기초지자체·교육청에서 조례가 제정했다. 그 속도가 참으로 놀랍다.그러나 속도에 비해 내용은 참으로 초라하다. 지난해부터 급속하게 확산된 지자체의 산재예방 조례 내용을 살펴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
실업급여에 대한 공격은 낯설지 않다. 2년 전 고용노동부가 5년 동안 3회 이상 수급한 경우 실업급여를 감액하는 방침을 밝힌 데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여러 노동·시민단체가 반대 입장을 낸 바 있었다. 최근에는 실업급여를 두고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와 여성·청년들의 공분이 일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열었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는 한 실업급여 담당자가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요”라며 여성과 청년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처음 ‘그런’ 언어를 마주한 날은 국회에서 변호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민원인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은 채 욕설과 함께 자기 할 말만 했고, 끝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선을 뽑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레퍼토리는 진부한 축에 속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사무실로 찾아오는지 여부 등 집요함의 수준이 다를 뿐 타인을 무너뜨리는 ‘그런’ 무례함은 다채롭게 끊이지 않았다. 소속된 일터가 바뀌어도 빈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법률원에서 사건을 맡기 어렵다고 하자 소리를 지르며
지난 15일 오전 경북 문경, 사흘째 쏟아져 내려오는 비에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지역 농산물 가공업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도 물에 잠기고 토사에 파묻혔다. 4년 전, 세 딸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태국 출신 30대 여성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지난해 8월 경기도 화성에서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다량의 토사물이 두 동의 컨테이너를 덮쳤다.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40대 중국 국적 이주노동자가 1층에서 몸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2020년 8월 경기도 이천에서 호우에 산양저수지의 둑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1.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 이 무슨 노조답지 않은 요구인가. 노동조합이면 노동조합답게 제대로 노조하겠다고 해야지,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구해 투쟁하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나라에서는 당신이 한심하다고 여길지 모를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사용자가 사업장에 설치하지 않아서 노동조합이 하는 요구고 투쟁이겠지만, 그 사업장 대부분에서는 노사협의회로 취급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노사협의회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서 사용자와 노동자, 노동조합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고, 노사협의회가 아니라고 보는 노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뭐야?”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 하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노무사로 살고 있는 이유를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나는 그 질문에 간단 명료하게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정돈돼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해 당황했던 것이다.“그 일을 선택한 계기는 뭔데?”앞선 질문에 “그냥 뭐…”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던 나에게 이 친구가 한 번 더 질문했다. 이 질문에는 그래도 답할 내용이 좀 있었다. 대학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34조와 35조에 최저임금제도 실시 근거를 뒀으나, 당시 우리 경제가 제도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이 규정을 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저임금을 제도적으로 해소하고 더불어 노동자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 도입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우리 경제가 이 제도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해 1986년 최저임금법을 제정해 1988년 1월1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최저임금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
“지옥 안 가고 천국에 가려면 착하게 살아” 서구의 종교는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들이대 인간을 계도했다. “역사가 너희를 심판하리라” 반면 동양에서는 후손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심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다. “이번 생에서 잘 살아야 다음 생에 좋은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어” 삶의 중단으로서 죽음 이후의 심판과 지속되는 삶으로서 역사적 심판이 겹치면 삶과 죽음이 섞여 힌두적 윤회가 된다.지금 작동하는 권력에 영향을 받거나 지금 옳다고 생각한 제도에 따르는 법의 심판보다 훨씬 넓은 사람들의 인식과 훨씬 긴 맥락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 실무에서 직업이 없는 사람의 수입을 계산하는 경우 ‘도시일용근로자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이 도시일용근로자 임금은 대한건설협회가 작성한 건설업 임금실태 조사보고서 중 ‘건설노임단가 보통인부 노임’을 이용한다. 이 조사보고서는 보통 상·하반기로 나눠 발표한다. 작업반장, 보통인부, 특별인부, 조력공, 비계공, 형틀목공 등의 1일 8시간 기준 노임단가가 기재돼 있다. 2023년 1월1일 기준 보통인부 노임단가는 15만7천68원으로 시급으로는 1만9천633원이다.건설업 임금실태 조사보고서는 일 단위로 계산되고, 도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가 후인 지난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그는 군수물자 지원, 인도적 자원, 정부 재정 지원과 재건 지원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갈 뜻을 밝혔다.이 말을 들으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백의종군에서 풀려난 이순신 장군은 왜의 수군과 해전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 대패로 매우 약화돼, 왕은 육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9천860원과 2.5%라는 숫자의 ‘허무함’ 또는 ‘황당함’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합의 없이 갈등적으로만 이뤄지는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노사 당사자들의 반성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말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공익위원들의 중재안이었던 9천920원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면 차악이 아닌 최악을 선택해도 괜찮을 걸까.‘최저임금 1만원이 아니면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은 사회운동적 구호로서는
지난해 가을 21년 서울살이를 마감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스무 해 넘게 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어린이집 다니던 큰딸은 20대 후반의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큰딸은 저축과 동시에 부동산 시세에 부쩍 관심이 많다.2001년 내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면, 강남3구는 아니라도 북한산 자락에 24평 아파트를 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도에 10평 소형아파트도 못 산다. 큰딸은 그때 무리해서 인(in)서울 했으면 엄마아빠 노후는 편했을 거라 말하
지난주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이 발표됐다. 2023년 상반기까지의 고용상황이 집계된 것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만 1년의 고용성적표가 공개된 것이다.정부는 고용률이 역대 최고(63.5%)이며 취업자(+33만3천명)도 28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고 자평했다. 언론은 늘어난 취업자는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자(+34만3천명)이며 청년들의 경우 8개월째 취업자 감소가 이어지면서 6월에도 11만7천명 감소했다고 혹평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청년 취업자가 많이 증가했던 기저효과(2022년 6월 +10만4천명)의 영향이 크고
지난 12일, 미국 배우 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 5월2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작가 노동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과 함께 63년 만에 영상산업에서 동반파업이 일어나게 됐다. 경향신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언론이 맷 데이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업에 동참 의사를 밝힌 소식을 전하며 이들을 배우‘조합’, 작가‘조합’으로 일컫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상·미디어산업의 대표적 노동조합이다.미국 작가노조의 뿌리는 1912
산업안전 분야 활동가들의 오랜 바람 중 하나는 ‘모든 노동자에게 모든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교육기관 등 교육서비스업에는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를 둘 필요가 없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개최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청소·시설관리·조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업무의 위험성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데, 이들이 고용노동부 고시인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현업고시)에 따른 ‘현업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