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 제조업 사업장에서 업무적합성 평가 요청이 들어왔다. 업무적합성 평가란 질병으로 아프거나 산업재해로 다친 노동자가 업무를 이어 갈 수 있는지 전문의사가 평가하는 것이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환자가 일했던 작업장 환경을 살핀다. 그리고 둘의 지속가능성과 전후맥락을 살피고 다음 네 가지 중 하나로 최종 결론을 내린다. 즉 △현재 조건하에서 현재업무 수행이 가능한지 △일정 조건하에서 현재업무가 가능한지 △한시적으로 현재업무 수행이 불가능한지 △영구적으로 현재업무 수행이 불가능한지 중 하나다
한 사업주의 도 넘은 갑질이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하나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빠르게 퍼지며, 그의 ‘가학적 노무관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영상의 장본인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그는 퇴사한 전 직원을 불러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욕설을 내뱉고, 손찌검을 하며 무릎까지 꿇렸다. 더욱 충격은 그를 지켜보는 회사 내 직원들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그를 저지하지도 만류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사내 워크숍 영상과 그의 엽기적인 행각이 줄지어 언론에 공개됐다. 노동자들은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결국
지난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뇌심혈관계질환 산업재해보상 신청 1천809건 중 589건을 인정했다. 승인율은 32.6%다. 올해는 8월까지 1천332건이 신청돼 550건이 인정됐다(승인율 41.3%). 업무상질병판정위 도입 이후 최고 인정률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뇌심질환 산재 인정률이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도 나온다.올해 승인율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고용노동부 고시(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개정과 시행이다. 고시의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고시의 기준과 업무상질병판정위의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서양 속담이다. 규칙은 일반화되기 마련이고 이런 일반화 속에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 대한 예외적인 배려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규칙이나 법률에 있어서 예외적인 규정들이 차별로 작용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해진 여러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관련 법령들이 사업장 규모나 영세성을 이유로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면 사업주들은 당장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관리 수준은 낮아지고 차별받게 된다.노동시간 문제에서도 예외는 차별을 낳는다. 이미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우리나라는 전체 사업장의 33.4%(2013년 한국노동연구원)가 야간작업이 포한된 교대작업을 하고 있다. 교대작업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수면장애일 것이다. 일례로 2012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 대상 설문에서 80.6%가 수면장애 증상이 있고, 10%가량이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한다는 놀라운 보도가 있었다.2016년 4조3교대 철강회사에 대한 가톨릭대 설문 결과 임상적 의미가 있는 기준인 중증도 이상 수면장애가 15.3%였고, 지난해 병원 근로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설문 결과에서도 중증도 이
정부가 지난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올해 안에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올해 초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처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고, 참여연대도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재계는 기업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며 반겼고, 자유한국당은 추진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거들었다. 심지어 한국경제는 제작비 100억원대 이상 대작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참패한 원인이 주 52시간제에 있다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 18일 발효됐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26조2가 시행령·시행규칙과 함께 공표된 것이다. 고객을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으로 응대하며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이 법에 의해 앞으로 ‘고객응대 노동자’는 고객의 폭언·폭행 등의 위협에서 벗어날 권리, 전화 끊을 권리 등을 갖게 됐다. 사업주는 이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고객응대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되거나 발생
“Free Job Change, Achieve WPS.” 지난 14일 이주노동자 대회 참석자들은 하늘색 바탕에 구름같이 하얀 글씨로 그들의 요구를 적어 들었다. 우리말로 하자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허가제를 쟁취하자”는 것이다. WPS(Work Permit System)는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 대안으로 주장되는 노동허가제를 말한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로 300인 미만 제조업, 건설업, 어업, 농축산업과
2016년 자살·정신질환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한 사건 169건 중 70건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됐다. 2017년에는 186건 중 104건이 승인됐다. 그런데 법원에서 자살·정신질환 사건은 2016년 18건 중 6건(33.3%), 2017년 34건 중 10건(29.4%), 2018년 상반기에는 17건 중 13건(76.5%)이 업무상재해로 확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이 2017년 11.4%, 2016년 11.1%임을 감안하면, 자살·정신질환 패소율은 매우 높다. 이는 공단의 자살·정신질환 기준과 판정에 있어
법의 문구 하나하나는 우리 삶을 규정한다. 하나 마나 한 말이지만 매번 공장들을 다닐 때마다 피부로 느낀다. 어느 날 한 대기업 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했더랬다. 커다란 디스플레이 공장 안에는 대략 수백 개 하청업체들이 있다.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다 파악하지도 못한다. 필자는 이 수백 개 하청업체들 중 서너 사업장과 산업보건의사로 계약을 맺고 상담 일을 한다. 그런데 두 개 업체를 방문했을 때 안전보건 담당자들이 공통된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우리 인원 줄어요. 원청에서 협력업체들 보고 100인 이하로 관리하래. 그래서 한 달
우리는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일해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타인이 사용하거나 이용하고, 나 또한 누군가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노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노동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무역이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출퇴근길에 겪는 불편을 감수하고 파업 중인 지하철·버스 노동자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이 나에게 지지를 보낼 것
추석연휴가 끝났다. 모두 고루 즐거워야 할 명절이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고달픈 시기가 되곤 한다. 추석연휴 직전 소식지를 받기 위해 동네 한 여성단체에 방문했다. 이런 저런 담소와 차를 나눈 후 헤어지며 활동가들과 “성평등한 명절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나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때마침 추석 인사로 “평등한 명절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을 담아 주변 분들과 나눴다는 것을 떠올렸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평등하게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명절 내내 곱씹어 보게 됐다.평등함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일상처럼 추석연휴를 맞고 싶은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 허리가 끊어질 듯해도 등허리에 둘러붙인 파스 몇 장에 의지하고 나선 날도 셀 수 없었다. 하루 이틀 일하고 그만두는 친구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젊은 것들의 끈기 없음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 역시도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법만 있었다면 벌써 몇 번이고 뛰쳐나갔을 것이기 때문이다.매일 냉동탑차로 입고되는 냉동수입축산물 상자는 1천 박스가 족히 넘었고, 그것들을 지게차로 부려서 내릴 수 있도록 팰릿 위에 쌓고, 상자들이 실려 나가도록 지게차가 부려 놓은 팰릿에서 탑차로 실어 쌓는 것이
2018년 11월1일부터 3일까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올해는 문송면군의 수은중독 사망,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직업환경의학회의 출범이 중요한 우리 사회 사건들과 연관돼 있으니, 학회가 사회와 무관하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직업환경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보다 훨씬 사회와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하는 학문이다. 앞서 말했듯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계기가 돼 학회가 만들어졌고, 2000년대 초반 조선업종·자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소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3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후속 법령인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6월18일 입법예고돼 10월18일 시행될 예정이다.그동안 고객들의 다양한 갑질사례 보도가 있었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고객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사업주 의무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명문화됨에 따라 이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을 필두로 안산·전주·광주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던 당신. 매캐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곧바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화재를 발견하고 숨 돌림 틈도 없이 119에 화재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한다. 그런데 화재신고를 접수하는 소방공무원이 당신에게 황당한 말을 건넨다. “빨리 불을 끄든지, 주민들 대피시키고 전화하세요.”예상 밖의 반응에 당혹해하는 당신에게 수화기 너머로 담당 소방공무원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무때나 불났다고 전화하면, 그때마다 출동하라는 겁니까?”당신이 화재상황에 대처하고자 119에 전화했는데 이
지난 1일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9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15대 과제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중 ‘산재보상 실태와 개선 권고안’은 18개 부분, 65개 세부 권고사항으로 구성돼 있다. 권고안의 기본 방향과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본정신은 사회보험 원리에 맞게 노동자의 접근성과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운용기준의 법 규범적 원칙은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 강화’(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다. 이러한 기본정신과 원칙은 산재
지난달 정부는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직장 괴롭힘 금지의무 도입을 결정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을 포함한 5개 법령을 고쳐 대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폭력행위가 발생하면 철저히 수사하고 회사가 직장 괴롭힘 피해자·신고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을 주는 일을 막고, 피해자에게는 산재보상과 법률상담·소송지원을 확대·강화하겠다는 것이다.직장 괴롭힘 혹은 일터 괴롭힘은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그의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건강을 훼손하는 행위’ 또는 ‘수치심·모욕감
지난주 노동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종사자, 산재인정 처리절차 개선”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노동자의 과중한 입증부담 해소와 산재보호 확대 지원”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보도자료에 의하면 근로복지공단과 법원 판결을 통해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사례와 유사한 공정에서 근무한 종사자가, 백혈병 등 이미 승인된 8개 상병으로 산재신청을 할 경우 역학조사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업무관련성 판단 과정을 간소화해 노동자의 과중한 입증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이다.사실관계를 놓고 보면 노동부는 매우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 산재신청을 한 노동
최근 일부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휴게시설 규모가 지나치게 작거나, 화장실 같은 부적절한 공간을 휴게시설로 사용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특히 휴게시설을 창고로 사용하거나 폐쇄하는 등의 사례도 있어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마련했다고 한다.가이드에는 휴게시설 설치의 필요성, 실태, 관련 규정, 설치 및 운영 가이드, 우수사례 등이 포함돼 있다. 설치 및 운영 가이드의 주요 내용은 공간(위치·규모), 내부환경(온도·습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