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마당엔 대한민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 박람회 준비가 한창이다. 삐죽한 천막 빼곡하게 그 너른 마당을 채웠으니 대규모다. 온갖 희망찬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거느라 사람들은 분주했다. 강약중강약 궂은비가 오전 내내 내린 탓에 오후 시간이 더욱 바빴다. 알바! 이쪽으로! 행사 관계자 목소리가 높았고, 그 자리 멀뚱멀뚱 섰던 청년들이 우왕좌왕 바삐 움
추석 앞이라고 도로에 차가 많았다. 길이 막혀 끼니때를 놓쳤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식당을 찾아들었다. 칠괴산업단지 인근 중국요릿집 ‘중국성’엔 사람이 붐볐다. 주방 한편에서 탕탕 면을 치대는 소리가 끊김 없다. 음식은 손맛이라더니, 거기 수타면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짜장면을 기다리며 손님들은 귀성 계획과 선물 목록과 명절 전 증후군 따
볕 좋은 날 광장에 장이 섰다. 온갖 팔도 특산물이 좌판에 죽 깔렸다. 빨갛게 잘 익은 사과며 씨알 굵은 배가 근사한 상자에 담겼다. 줄줄이 엮은 굴비부터 어디 무슨 벌꿀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카드 환영 안내문이 크게 붙었다. 싸고 믿을 만하다니 천막 아래가 사람들로 붐볐다. 내일모레가 추석이다. 공장으로 돌아가자던 해고자 몇몇이 그 곁을 바삐 지났다. 3
언젠가 3포라더니 5포, 또 7포란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 대인관계며 내 집 마련에 희망과 꿈까지 접었다니 꼽아 보기도 버겁다. 점점 늘어 이제 N포란다.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해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능하다고 한때 N세대라고도 불렸던 이 시대 청년은 지금 집도 사랑도 뭣도 없어 동수저도 사치라 여긴다. 자조 담긴 흙수저를 인증한다. 이상한 나라의 성실한
이게 다 쇠파이프 휘두른 노동자 탓이라고 여당 대표가 총대 메고 나섰다. 싸우자는 거다. 규탄발언과 행동이 잇따랐다.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이 소란스러웠다. 붉은 펼침막엔 그 입 다물라는 경고와 함께 유력 대선후보 얼굴이 선명했다. 날 선 발언 이어 달걀이 그리로 날아들었다. 무참히 깨졌다. 노른자 사방으로 튀었다. 친일파 청산과 재벌개혁만 잘했어도 소득 3
오래도록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좀 쉬시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맞벌이 나선 젊은 엄마 아빠는 별수가 없었다. 늙은 엄마 품에 딸아이를 안겼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손주를 등에 태우고 마루를 기었다. 멍멍 짖고 야옹 울었다. 아이는 잘 따랐다. 잦은 야근에도 아이는 밝게 웃었다. 용돈 얼마간 꼬박 쥐여 드리는 것으로 마음 짐을 덜었다. 아이들 다 키워 낸 늙
대국민 담화를 읽어 내리던 대통령 뒷자리에, 영화 국회 상영회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여당 대표 손에, 잠실벌 높다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노동부 장관 옷깃에, 또 해고자 눈물 흘리던 대법원 앞마당에도 태극기가 있었다. 바닷속 세월호에도, 안산 단원고 교정에도, 거기 텅 빈 교실에도 국기가 또렷했다. 촛불 행렬에, 어느 뜨겁던 길거리
비둘기 떼가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평화의 상징이었으나, 지금 사람들 생각은 좀 다르다. 여기저기서 골칫거리다. 닭둘기라고도 불린다. 좋아라 뒤쫓는 건 아이들뿐이다. 푸드덕 날갯짓에 비명 터진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짓자고 누군가 노래했지만 흘러간 옛노래다. 높은 자리 우뚝 선 광고탑은 자본의
꽁꽁 둘러싸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저 무진복은 한여름 땡볕 아래 참으로 별스러웠다. 오늘 참 덥다고, 사람들 인사말이 한결같은 날이었다. 무진복은 애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춤 한바탕 선보이고 내려오는데 땀 한 바가지를 쏟아야 했다. 시선은 끌었으니 무대복 소임은 해냈다. 먼지 없는 방에는 쉴 틈도 없었다. 교대 근무가 밤낮으로 빡빡하게 돌아갔다.
아들은 엄마의 고장 난 스마트폰이 걱정이었다. 이리저리 손봐 고쳤다. 자전거 달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을 찾아 엄마 손에 건넸다.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 나미자씨는 노동청 앞자리에서 철야농성 중이다. 14일로 보름째다. 불법사찰과 채증 등 회사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노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으니, 스마트폰을 쓴 지가 꼭 2년이다
잿빛 공장 건물 한편 삐죽 솟은 굴뚝에 올라 그는 살았다. 별 헤는 밤이 깊고도 길었다. 북극성처럼 거기 박혀 길잡이 노릇을 오래도록 했다. 내내 꼿꼿했다. 그 아래를 찾아 불온한 덧셈을 이어 가던 사람들은 혹시 부러지진 않을까 염려했다. 기우에 그쳤다. 408일 만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 먼지 날리던 공장 터를 적셨다. 꾸역꾸역 모여든 사람들이 고개
불 꺼진 전광판에 현수막이 붙었다. 그건 바람에 휘날려 자주 꼬이고 뒤집혔는데, 구멍 내고 추를 달아 겨우 잡아 뒀다. 그 윗자리 올라 버티던 사람 둘은 현수막 펴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난파선 조각에 매달려 표류하다가 닿은 어느 섬 해변 모래 위에 새긴 조난신호처럼, 현수막에 새긴 요구는 자꾸만 찌그러졌고, 흐릿해졌다. 섬사람들은 날짜 꼬박 세어 가며
승소. 10년 만의 일이었으니 사람들은 즐겁다. 여러 날을 함께한 법률 대리인의 선창에 뒤따른 만세 삼창이 거기 탁 트인 하늘 아래에서 어색할 리 없었다. 그 표정 전하려는 카메라가 몰려 잠시 그곳이 복잡했다지만 이상할 것 없었다. 애써 가로막던 손들이 다만 낯설었다. 정문 향하던 길 내내 따라붙어 대우가 특별했다. 노동조합 조끼를 끝내 문제 삼았다. 원래
언젠가 평택 칠괴동 공장에 역병이 돌았고, 목이 뎅겅 사람들이 잘려 나갔다. 버티던 이들은 끌려 나갔다. 속절없이 떠돌다가는 하나둘, 소득 없이 가난하게 죽어 갔다. 소독약은 듣질 않았다. 방역체계가 없었다. 죽지 않아 살아남은 이들이 여전히 역병과 싸운다. 정부청사 가까운 어느 거리 상가를 지킨다. 열사 정신계승 머리띠 묶고서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을 규탄했
노동조합하던 이가 목을 맸다. 상여꾼 자청한 노조 사람들이 저마다 한 짐 메고 서울 낯선 데를 찾아갔다. 상복 차림으로 거기 말끔한 건물 앞을 지켜 섰다. 두건 위로는 까만색 머리띠를 질끈 맸다. 등에는 영정을 멨다. 기자회견 하느라 섰는데 눈이 자주 매웠다. 벌게진 눈을 슬쩍 훔치니 물기 묻어나 굳은살 배긴 손이 반질거렸다. 선소리 매기던 이는 자꾸 목이
서울 어디, 원래는 차 다니던 길에 사람이 들었다. 목소리 높였다. 차벽이 금세 높아 막다른 길이었다. 오도 가도 못했다. 아이가 쪼그려 앉아 길바닥에 글을 남겼다. 하늘나라 간 언니·오빠의 안녕을 바랐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는데, 분필이 자꾸만 뚝뚝 부러졌다. 몽당분필 겨우 쥐고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풍선 달린 배 그림을 그 아래에
봄볕이 따뜻했고, 잔디가 넉넉히 자라 바닥이 푹신했다. 병아리떼 쫑쫑쫑 봄나들이 나서기 좋은 날. 너른 광장엔 이모 삼촌이 많아 붐볐다. 나리나리 개나리꽃처럼 노란 리본을 저마다 가슴팍에 달았다. 오리는 꽥꽥, 염소 음매, 돼지는 꿀꿀 소리 냈고, 엄마는 투쟁이라고 소리쳤다. 웃음 좋던 이모·삼촌이 고개 숙인 채 심각했다. 지켜 주지 못한 아이
20일 오후 휠체어 탄 장애인과 활동보조인들이 인도를 따라 광화문광장을 향했다. 겹겹이 경찰이 방패 앞세워 막았다. 뒤로는 촘촘히 차벽이 섰다. 왜 막느냐는 질문에 답할 경찰 책임자는 거기 없었다. 지난밤 겹겹이 차벽이 섰던 그 자리다. 물대포 최루액이 흥건했던 광장 앞이다. 갈 길 가겠다며 잠시 밀어 봤지만 꿈쩍할 리 없었다. 바퀴가 자주 헛돌았다. 채증
연대 나선 길이 순탄찮다. 학교는 온통 공사장이었다. 인도는 비좁았고 임시계단은 가팔랐다. 아이유,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허리 절로 굽었다. 고용안정 보장 구호가 그 와중에 버거웠다. 줄지어 꾸역꾸역 걸어 닿은 곳에 벚꽃과 목련과 진달래가 펴 화사했다. 봄옷 한껏 멋을 낸 학생들이 꽃 길 지나며 까르르 웃었고, 능숙하게 셀카를 찍었다. 그 옆자리
현장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멀다고, 그 앞 움막 사는 남자가 말했다. 신작로가 반듯했지만 실은 거기 깊은 산골이었다. 겨울이면 가슴팍까지 눈이 쌓이고 삵과 노루가 먹이 찾아 내려와 붐비는 자리란다. 재 너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는 늙어 낯익은 골짜기에 움막을 지었고 빨간 머리띠를 둘렀다. 보이지도 않는 현장을 바닥 그림 보태 가며 상세히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