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하느라 사람들이 바쁘다. 노랑 파랑 빨강 온갖 꽃과 어린나무를, 또 잔디를 심는다. 물을 주고 살뜰하게 보살핀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경고문 세워 안전을 보장한다. 봄볕 아래 초록빛 쑥쑥 잘도 자란다. 투실투실 잔디 더미가 저기 가득. 얼음 지치던 광장에도 어느덧 봄이다. 거기 동료 떠나보내느라 노동자들이 상복 입고 바쁘다. 국화를 꽂고, 향을 심는
광화문광장에 봄볕 들었다. 부지런한 꽃장수가 한 단에 2천원 하는 노란색 프리지아 따위 온갖 봄꽃을 늘어놓았으니 거기 꽃길이었다. 안테나 높이 세운 방송 중계차가 그 옆 새로 생긴 호텔 앞자리에 빼곡했다. 언젠가 통신비정규 노동자 올라 농성했던 전광판엔 내내 바둑판이 떴다. 건널목 선 사람들이 저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해고된 통신비정규
소름 끼치도록 기분 나쁜 굉음이 마치 기름 떨어진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듯, 방 끝에 있는 커다란 텔레스크린에서 터져 나왔다. ‘증오’가 시작된 것이다. 여느 때처럼 인민의 적인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비쳤다. 여기저기서 관중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갈색 머리칼의 여자는 공포와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꽥꽥 질렀다. 골드스타인은 변절
눈이 쏟아졌고 제법 쌓였다. 2월 말, 언젠가의 벚꽃노래 다시금 음원 순위표를 슬슬 기어오르던 봄 가까운 날이었다. 렛잇고 렛잇고 후렴구만을 겨우 외우고도 신나서 무한반복 노래하는 딸아이 손을 잡고 눈밭을 굴렀다. 눈덩이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뽀드득 소리가 나던 눈은 잘 붙어 금세 커졌다. 나뭇가지 주워 눈코입을 빼뚤 붙이니 그럴듯했다. 아이는 내내
권력자도, 거기 줄 선 어느 진실하다는 권력 꿈나무들도 모두가 청년을 말하고 걱정한다. 청년일자리 걱정에 자다가도 몇 번을 깨 통탄한다니 그 사랑이 깊다. 말끝마다 청년이다. 이게 다 발목 잡는 야당 탓이라며 주먹 내리쳐 가며 편 가른다. 야당이며 여느 진보진영도 청년을 말한다. 흙수저와 헬조선 따위 청년발 신조어를 현수막이며 토론집 제목으로 삼았다. 변화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 내야 할 규제만 살려 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사람들은 침침한 눈을 비비며 노안을 의심했다. 귀를 팠다. 문득 슬퍼진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왈칵 뜨거운 것이 올라와 서러웠다고 겨우 적었다. 언젠가 4월16일, 큰 배가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 빠졌다. 배에 탄 사람 대부분
구불구불 먼 길 견뎌 찾아가 꼭 쥔 손에 주름이 나이테처럼 늘었다. 마른 장작처럼 거친 손에 슬쩍 쥐여 드린 봉투는 홀쭉했다. 죄송한 맘 전하려 보탠 말이 길었다. 전을 부쳤다. 새 아침 엎드려 절하는 것으로 예를 갖췄고 넘치는 복을 주거니 받거니 나눴다. 새해 바람을 되새김질했다. 세뱃돈 봉투가 또 홀쭉했지만, 덕담이 풍성했다. 건강과 취업과 결혼이며 승
명절 앞둔 도심 네거리엔 차도 사람도 많아 분주했다. 어딜 가나 꽉 막혀 체증은 풀릴 줄을 몰랐다. 마음 급한 누군가 무리한 끼어들기에 나섰다. 창문 내린 운전자가 홧김에 욕을 뱉었다. 빵빵 경적 소리에 일대가 소란스러웠다. 거기 곳곳 때 이른 봄 노래가 울려 섞였다. 입춘인 줄 어찌 알고 날이 좀 풀렸고 햇볕이 구석구석에 미쳤다. 동화면세점 앞 금속노조
노동조합 조끼와 모자 달린 두툼한 점퍼, 튼튼해 보이는 등산화와 등에 메는 가방까지 익숙한 모습이다. 아무 데고 주저앉는 데에도 거리낌 없다. 흔한 풍경이다. 누군가 꺼내 든 두툼한 종이 책이 다만 낯설었다. 사람들은 요즘 한자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개 숙인 채 말이 없다. 저마다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뉴스를 검색하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훑는다.
네 살 딸아이가 식탁에 앉아 외쳤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수저 들어 박자까지 맞추는 게 기특해 맞장구쳤지만, 뒤끝이 씁쓸했다. 응원 열기 뜨거웠던 그 광장에서 울고 웃던 청년들은 흙수저 들고 지금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고용시장도, 노정관계도 꽁꽁 얼어붙었다고 뉴스는 전한다. 절망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은 더는 이 나라를 응원하지 않는다. 광
청년들은 옛 일본대사관 터 맞은편 길바닥에 앉아 식은 백설기를 뜯고 미지근한 차 한 잔을 나눈다. 어둑어둑 심상찮던 하늘에서 눈발 날아와 덮고 앉은 솜이불 위에 소복 쌓이는데, 툭 한 번 털고 만다. 자릴 오래 지킨다. 옆자리 가만 선 가수가 고무장갑처럼 붉은 손을 해서 통기타 줄을 부지런히 잡고 뜯는다. 순서 기다리던 또 다른 가수가 아에이오우 언 입을
새 해가 떴다. 어제 또 그제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 애써 의미를 찾는다. 매듭 삼아 오늘 더 새롭기를 바란다. 그 새벽 어디 높은 곳이며 땅끝을 찾아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볕은 대체로 공평한 편이어서 새벽어둠과 추위를 견디던 사람들의 볼과 눈이며, 코에 고루 이르렀지만, 어제 그늘진 곳엔 새로이 그늘 더욱 짙었다. 오래전 쌓인 눈이
남산 중턱 햇볕 귀한 언덕길에 비석이 세 개 있다. 누군가의 이름과 사연을 새긴 돌이 비바람과 시간을 견뎠다. 추모비라고 불렸다. 2000년 겨울, 미시령 옛길을 넘어가던 버스가 뒤집혔고, 까마득한 벼랑 앞에 겨우 멈췄다. 수십 명이 버스에 올랐지만 제 발로 내린 이가 적었다. 일곱이 죽었고 여럿이 피 흘렸다. 참사라고 뉴스는 전했다. 브레이크 고장 때문이
바람 매섭다. 뜨끈한 아랫목 이불 속 그리운 철, 잔뜩 껴입고 거리 나선 이들이 많다. 날숨마다 구호마다 안경알이 뿌옇다. 장갑 낀 손으로 대충 닦고 만다. 이 정부 무슨 타령에 뿔난 사람들이다. 개혁 타령이 1절이다. 바람이 분다. 해고 바람이 분다. 노동 개혁에 쉬운 해고 칼바람 분다. 재벌 좋네. 아 좋네. 꿀맛이여. 에헤라. 재벌 청원이구나. 거기
언젠가 기타 만들던 늙은 노동자의 서울 여의도 단식농성장 앞에서 한때 고속열차에 올라 일하던 승무원 한숨이 깊었다. 어디 올라갈 데라도 찾아봐야 하는지를 농담처럼 물었다. 거기 지척 광고탑엔 화물노동자 둘이 올라 농성했다. 어느덧 비바람에 삭아 흐릿한 현수막이 사정을 겨우 알렸다. 그 아래 국회 앞길엔 빨간색 현수막이 매번 말끔하게 내걸렸다. 거기 새긴 노
빨간불에 멈춰 선 게 줄줄이 갈 길 바쁜 자동차만 아니라, 신호등 기다리며 옷깃 여미던 시민만 아니라, 저기 세월호 광장 천막 안에 걸린 달력이, 또 시곗바늘이, 단체 사진 속 해맑던 아이들 모습이 또한 그대로 멈췄다. 허튼 시간만이 돌고 돌아 아이들 영정이 두 번의 눈을 맞는다. 거리에 선 엄마 아빠 머리 위에는 진작에 흰 눈이 소복했다. 진상조사를 위한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가톨릭 탄압에 저항해 1605년 11월 영국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하려던 '화약음모사건'의 주인공이다. 영화 로 널리 알려졌다. 국제해킹그룹 어나니머스의 얼굴로도 쓰인다. 월가 시위 등을 거치며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15년 11월 노동개악과 국정교과서 저지, 밥쌀 수입 반대 등을
이제는 민생이라고, 여당 대표는 국정교과서 싸움 나선 야당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발 빠른 현수막이 네거리 곳곳에 걸렸다. 쫙 깔렸다. 새누리당이 해냈다고 알렸다. 영세자영업자는 이제 카드수수료 걱정을 덜었다고 붉은색 현수막이 전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올바른 역사를 씁니다라고도 새겨 알렸다. 그 단어 어디서도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과연 긍정 대장의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다. 진짜 생각 따위가 궁금한 게 아니다. 맞장구가 필요할 뿐이다. 격한 공감, 토 달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한다. 대개는 일방적이다. 그 옛날 왕과 독재자의 질문이 그러했을 터. 신조어는 종종 역사를 거슬러 올라 그 의미를 찾는다. 힘없는 이는 대답을 할 뿐, 질문은 불온한 것이었다. 때때로 그
평화시장 건너 창신동 골목길 굽이굽이 누비면 전통시장 지나 봉제공장이 따닥따닥. 김 사장도 박 사장도 거기 많아 어디 부자 동넨가. 담벼락 빨랫줄엔 낡은 군용바지와 주머니 많은 조끼와 페인트 얼룩 티셔츠만 덜렁. 한숨 돌릴 때쯤 어머니 살던 집이, 열사의 이름 딴 재단이. 오르막 가팔라 뒷다리 근육 파르르 떨릴 때쯤 지팡이 버거운 노파 기대 쉬던 옛 한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