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줄줄이 섰는데 가림막 따위 없어 땡볕 아래 시달린 피부가 구릿빛, 동메달이다. 해고 200일 맞이 자리였다니 실은 목메달이다. 오래도록 전신주며 건물 벽에 매달렸고, 영업에 매달렸고, 시간에 쫓겨 내달렸다. '니퍼쟁이'들 지금은 길에서 복직싸움에 매달리고 있다. 낡고 때 묻은 선전물 들고 벌서는데, 얼굴이고 겨드랑이고 줄줄 흐르는 게 땀이다. 챙겨 나
횡단보도 가득 채운 사람과 셀카봉. 여름이면 솟던 물줄기와 뛰고 구르며 재잘거리던 꼬마들. 웃음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던 엄마 아빠. 그리고 향불 앞 끝나지 않는 사진전, 시들지 않는 국화, 늘어선 천막과 노란색 깃발. 그 아래 까맣게 탄 사람들까지 광장 풍경이 변함없다. 농성장 돗자리 하나가 늘었대도 익숙한 풍경, 틀린 그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석태
머리엔 빨간색 띠를, 왼쪽 팔엔 붕대를 두른 이재헌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이 서울 용산구 갑을빌딩 앞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앞자리가 한산했다. 건물 안 경비노동자가 폐문 알림장을 유리문에 붙였다. 양복 차림 사람들이 종종 폐문을 드나들었다. 약속한 시각, 마이크 잡아 말을 풀었는데 말 못할 사연이 많아 말이 길었다. 노조파괴를 규탄하고 교섭을 촉구했다.
시골집 개 복슬이다. 엄마 친구다. 간식 잔뜩 사 들고 내려온 아들 등을 때리며 타박하던 엄마는 당신 몫 아이스크림을 손에 덜어 내밀었다. 복슬이가 남김없이 핥았다. 활짝 엄마가 웃었다. 너른 마당 잔디밭을 뛰고 구르다 배고프면 밥그릇에 얼굴 파묻고 부스럭거리다 그늘 찾아 한숨 늘어지게 잔다. 개 팔자가 나쁘지 않다. 십수명이 한자리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는
서울중앙지법 5번 법정 출입구가 꽉 막혀 시끄럽다. 우산이 문제다. 길고 뾰족한 그것은 흉기가 될 수 있다고 그곳 경비노동자가 단호한 말투로 알렸다. 보안문 옆에 번호표 매단 흉기가 잔뜩 쌓였다. 법정은 눈 빨간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탄식이 곧 쏟아졌다. 입 앙다문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우산 찾는 일이 더뎠다. 줄이 길었고 줄지를 않았
누구도 챙겨 주질 않았으니 안전은 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질 않았으니 안전은 남 일이었다. 에어컨 수리하던 노동자는 안전장비가 없었다. 시간에 쫓겼고 실적압박에 떠밀렸다. 떨어졌고, 죽었다.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어린 아들이 메모지에 적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배달하던 알바노동자가 쫓기듯 도로를 내달렸다. 최소배달시간 20분이 그를 폭주로 내몰
추적추적 비 오는데, 장지가 멀다. 100리 걸어 부르튼 발가락에 빗물 들어 퉁퉁 살갗이 불었다. 까만 얼굴엔 줄줄 구정물이 흘렀다. 양재 가는 길, 꽃길 100리라 이름 붙인 고행길 한 매듭을 짓던 날, 비가 쏟아졌다. 산발한 상여꾼들이 찢어진 상복 안쪽을 뒤적여 젖은 담배를 물었다. 타들어 갔다. 딱 비에 젖은 상복 두께만큼 가까이서 사람들이 부대꼈다.
한강 노들섬 사는 개 노들이 2세가 한가로이 풀을 씹는다. 보통 터무니없는 말을 두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하는데, 개는 종종 풀을 뜯는다. 먼 친척 중에 진돗개도 있다는데, 종류를 딱히 말할 수는 없단다. 동네 흔한 똥개다. 사람을 물지 않는단다. 거기 텃밭 도시 농부들이 오며 가며 아는 체를 하면 좋다고 꼬리 치며 바닥을 구른다. 앉아 소리도 잘 알
누가 청년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저기 안전문을 보게 하라. 보라, 빽빽하게 붙어 있는 저마다의 쓰라린 절규를. 저 슬픈 것들 싹 읽고 나서야 사람들 겨우 한 발짝을 뗀다. 비틀거린다. 거기 종일 파도처럼 몰아치던 어느 정치인의 방문도, 번쩍이던 카메라 플래시도, 쏟아진 온갖 대책도 죄다 연착이었다. 죽음 뒤였다. 피어 보지 못한 미생의 무덤가에 활짝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 새 말이다.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중독, 금단현상의 일종이다. 집회자리 어디서든 익숙한 풍경이다. 저기 자동차회사 정문 앞에서 영정 지키던 노동자가 스마트폰 들고 바쁘다. 기자회견은 시작부터 다툼으로 번졌고 끝
코미디언 이봉원입니다. 이름 물었더니 답이 술술 이런 식이다. 대학에서 청소일을 한다. 5년째다. 올해 61, 자식 둘은 다 컸다. 그 나이로 안 보인다니, 그런 얘기 자주 듣는단다. 봄 축제로 들썩거리던 교정엔 넘치는 웃음만큼이나 쓰레기가 넘쳐 나기 마련인데, 전 같지는 않단다. 자정노력이다. 학생들은 이날 청소 경비 노동자들에 점심을 대접하며 고마운 마
알록달록 화려한 색 뽐낸 봄꽃이 능숙한 삽질에 뽑혔다. 소용을 다 했다. 그 자리 여름꽃이 대신한다고 한다. 한철이 금방이다. 녹지관리 노동자가 구슬땀 뽑아 가며 손 바삐 놀렸다. 모자와 토시로 초여름볕을 견뎠다. 어느 은행 노동조합의 조끼를 작업복 삼았다. 노동조합의 노자를 지웠고, 가슴팍 단결투쟁 문구도 일부 가렸지만 알아보는 데 문제가 없었다. 주인
늦은 밤, 덜그럭거리는 연장 가방 메고 아버지가 왔다. 술냄새가 폴폴, 오래 삭힌 홍어 냄새가 거기 섞였다. 취기에 비틀거리던 아버지가 새로 산 흰색 농구화를 밟을까 걱정했다. 유명 상표였는데, 어머니를 오래도록 졸라 얻어 낸 것이었다. 아래만 지켜보고 전전긍긍 섰는데, 아버지가 껴안고 얼굴을 비볐다. 정리 안 된 수염이 까칠해 나는 뒤로 내뺐다. 평소 무
널따란 플라스틱 화분에 거름기 많은 흙을 채웠고 씨앗을 뿌렸다. 강낭콩과 분꽃, 해바라기며 채송화와 봉선화까지 종류도 가지가지. 물 주기를 잊지 않고 살폈다. 햇볕과 바람을 신경 썼다. 어느 날 아침 새싹이 삐죽 여기저기 솟았다. 하루하루 달랐다. 가만히 들여다보기를 즐겼다. 한 시간도 훌쩍 갔다. 사방천지에 널린 게 새싹이고 꽃인데, 시간 들이고 마음 준
비닐로 지은 농성장은 여기저기 낡았지만, 증축을 거듭해 나날이 튼튼했다. 그럴듯한 여닫이문도 붙었다. 온갖 사연 새긴 조끼와 선전물이 치렁치렁 걸렸다. 거기 머리숱 적은 사람이 살았다. 192일째라고 팻말 걸었다. 강성노조 때문에 건실한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언젠가 집권당 대표가 말했고, 노동개혁 깃발이 곧 여기저기 무성했다. 발끈했다. 농성을 시작했다.
넘어져도 아이는 곧잘 일어나 뒤뚱거리며 사방을 향했다. 거기 물가였지만 엄마 눈이, 손길이 서툰 걸음마보다는 빨랐다. 봄볕이 따뜻했고, 바람은 살랑살랑. 이 좋은 봄, 엄마 얼굴에 웃음꽃 피우는 사월이다. 손잡아 설레는 청춘은 걸음걸이 호흡 맞춰 내내 경쾌했다. 징검다리 건너면서도 잡은 손 놓지를 않았다. 아이를 보면서 함께 웃었다. 사랑 꽃피는 봄, 아름
주름지고 거칠어 볼품없는 저기 늙은 손이 한때 고왔다. 봄볕에 녹아 부푼 흙 사이로 삐죽 고개 내밀던 초록빛 새싹만큼이나 언젠가 그 손에도 생기 넘쳤다. 땅을 일구고 밥 짓고 불 때고 아이를 키워 내느라 돌볼 틈이 없었다. 손톱 밑엔 흙이 들어 빠질 줄 몰랐다. 나날이 거칠었다. 못이 박였다. 철 따라 나랏일 맡겨 달라며 누군가 뽀얀 손 내밀어 그 손을 꼭
봄맞이하느라 사람들이 바쁘다. 노랑 파랑 빨강 온갖 꽃과 어린나무를, 또 잔디를 심는다. 물을 주고 살뜰하게 보살핀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경고문 세워 안전을 보장한다. 봄볕 아래 초록빛 쑥쑥 잘도 자란다. 투실투실 잔디 더미가 저기 가득. 얼음 지치던 광장에도 어느덧 봄이다. 거기 동료 떠나보내느라 노동자들이 상복 입고 바쁘다. 국화를 꽂고, 향을 심는
광화문광장에 봄볕 들었다. 부지런한 꽃장수가 한 단에 2천원 하는 노란색 프리지아 따위 온갖 봄꽃을 늘어놓았으니 거기 꽃길이었다. 안테나 높이 세운 방송 중계차가 그 옆 새로 생긴 호텔 앞자리에 빼곡했다. 언젠가 통신비정규 노동자 올라 농성했던 전광판엔 내내 바둑판이 떴다. 건널목 선 사람들이 저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해고된 통신비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