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리본 두 개가 세종로 젖은 바닥에서 물기 머금은 채 나란했다. 쇠줄 하나가 둘을 엮었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달랐을 뿐 모양이 똑 닮았다. 잊지 말자고, 거기 새긴 의미도 한가지다. 2017년 3월31일 스텔라데이지호가 먼바다에서 침몰했다. 22명이 실종됐다. 한국인 선원은 8명이다. 16인승 구명 뗏목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거기 선원이 생존해
지나던 아이가 저게 꽹과리냐고 물었고 엄마가 징이라고 답했다. 하이디스가 뭐냐고 버스 기다리던 학생이 물었고 나도 모른다고 친구가 답했다. 뒤에 적은 먹튀를 알아보고 몇 마디를 보탰다. 먹구름이 짙었다. 곧 비가 내렸다. 우산 없는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지나갔다. 흰옷 입은 해고자들이 줄지어 세 걸음을 걸었다. 징 소리 울렸고 바짝 엎드렸다. 징 소리에 일어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따위 기술 진보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은 연결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소통을 위한 온갖 단체톡 방이 바삐 돌아간다. 펜과 수첩이 어느새 낯설다. 유물 취급이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들 또한 예외는 없어 한 손엔 깃발을,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에 선다. 그러나 찍고 듣고 엿보고 즐기는 스마트 생활
머리 희끗희끗한 버스 노동자가 머리띠 두른 모자를 썼다. 땀 흘리며 앉아 폭염을 버티다 깜박 졸았다. 하품이 터졌다. 꽝하고 울려대던 대형 스피커 소리 맞춰 무대에 선 가수가 를 불렀다. 저 푸른 옷엔 모범운전자 마크가 선명했다. 그것은 자랑이었으나 때때로 낙인 같았다. 노예운전, 살인운전이라고 스스로 적어 현수막을 걸었다.
싸움 나선 사람들은 구호 끝마다 승리를 외치지만 된더위 이기기가 쉽지 않다. 챙 넓은 모자와 토시로 따가운 여름 볕은 피해 보는데, 절절 끓는 바닥을 어쩔 도리가 없다. 앉으면 거기 불가마 소금방이다. 나오는 문도, 얼음방도 없어 땀이 줄줄 하염없이 흐른다. 등짝에 활짝 소금 꽃 핀다. 어쩌다 부는 바람이 달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라는 휴대용 선풍기가 필수
폭염 속 항의 기자회견은 목 타는 일이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페트병엔 얼음 동동 양파 달인 물이 들었다. 혈압에 좋단다. 한 잔씩 나누니 내내 찌푸렸던 사람들 표정이 금세 밝았다. 밥하는 동네 아줌마도, 간호조무사도, 요양보호사도 할 말이 울컥 차고 넘쳐 목이 바짝 말랐다. 꾹꾹 손으로 눌러 쓴 발언문 읽는 눈이 자꾸만 축축했다. 양파처럼 까도 까도 나오는 어느 국회의원의 막말에 눈이 매웠다. 차곡차곡 쌓여 왔던 설움 빵빵 터졌다. 일파만파다. 양파 대파 끓인 육수 앞에 국자 들고 땀 흘렸던 급식 조리사들은 낯선 국회에서 눈
폭염주의보 발효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요란한 소리를 울려 댄다. 찜통이니 가마솥 따위 제목 붙은 날씨 기사가 주르륵 뜬다. 땡볕 아래 진작에 검게 탄 얼굴 따라 줄줄 땀이 흐른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고 또 솟아 땀 훔치던 옷 소매가 어느새 누렇다. 온갖 무늬 소금꽃이 노조 조끼며 상복 등판에 선명하다. 땀 냄새 퀴퀴하다. 열사의 땅에서 오아시스 찾아가
펜과 수첩 따위가 한때 저들의 연장이었으나 이제 랩톱 컴퓨터가 대신한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무선 인터넷망은 편리했지만, 저들의 꿀맛 같은 휴식을 앗아 가곤 했다. 든든했던 온갖 핑곗거리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멍 때리기는 사치스러웠다.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종이책을 읽는 건 미래의 상이었다. 기자회견의 주요 발언을 받아 치는 틈틈이 다음 일정을 확
인터넷이 느리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피살된 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있다.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화가 난 주민이 작업줄을 잘라 떨어져 죽은 고공 도색 노동자가 있다. 봉투 값 20원으로 다투다 피살된 편의점 야간 알바 노동자가 있다. 안전 장구는 없었다. 피할 곳이 없었다. 온전히 책임지는 곳이 없었다. 범행은 우발적이었으나, 죽음은 구조적이었다고 사람들은 말
밥 짓고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밥 차릴 시간이라던 늙은 엄마의 말은 진짜였다. 치운다고 치워도 집구석은 더러웠는데, 그런 건 꼭 정신없는 아침 출근시간이면 눈에 밟혔다. 지근지근 발에 밟혔다. 먹이고 씻기고 입혀 겨우 나설라치면 다른 옷 입겠다고 우는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할 여유가 그 아침엔 없어 목소리가 자주 높았다. 어린이집 가는 짧은 길은 하염없이
길에서 나무는 아름드리 자라 사람 무게를 너끈히 견뎠다. 길에서 오래 지낸 사람은 높은 곳 오르는 데에 거침없었다. 고개 들어 살피던 아랫자리 동료들이 고공농성이냐고 묻고 웃었는데, 마냥 빈말은 아니었다. 언젠가 굶고 버틴 고공농성장이 거기서 가까웠다. 대수선하느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이 어수선했다. 농성장 겹겹의 비닐은 비와 바람과 추위를 막았지만 한낮
두 팔 휘휘 흔들어 시동 건다. 무릎 슬슬 구부려 박자 맞춘다. 한순간 잔뜩 웅크렸다가 펄쩍 뛰어 봤는데 영 맘 같지가 않다. 응원 부족 탓인가, 늙고 병든 몸 탓인가. 다행인 건 단체경기였다는 것. 그래도 바닥에 새긴 최저임금 1만원 선은 훌쩍 넘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모여 작은 운동회를 했다. 열기가 뜨거웠다. 마침 날도 뜨거웠다. 시끌벅적 웃음소리
미세먼지 가신 파란 하늘이 거짓말 같았다. 햇살이 눈부셨다. 뭉게뭉게 구름 일어나 종종 그늘을 드리웠다. 바람 선선했다. 연둣빛 작고 여리던 새잎이 어느새 가지마다 무성했다. 한해살이 초록 잎은 청년기에 들었다. 담배와 냉커피며 숙취해소 음료 따위 바코드를 무심히 찍던 편의점 알바생이 틈틈이 스마트폰을 살피느라 손님 든 줄을 몰랐다. 구석 자리 테이블에 기
이른 아침상에 조각 케이크가 올랐다. 초 꽂느라 신난 아이는 저도 다 안다는 듯 성냥을 아빠에게 양보했다. 애써 끓인 미역국은 먹지 않겠다고 우겼다. 계속되는 야근에 아침잠이 간절했던 엄마는 허탈했다. 4년 전 일이라며 페이스북이 끄집어 낸 사진 속에 눈도 못 뜬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있었다. 5월18일이었다. 예정일이 5월16일이었는데, 아이가 늑장을
사진가는 마스크 쓰고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닥치는 대로 부쉈다. 능숙했다. 얼굴 가린 또 다른 사진가는 못 박힌 각목을 부지런히 날랐다. 시인과 해고자와 비정규 노동자며 소식 듣고 제 발로 찾아온 촛불시민까지 지난겨울 광장에서 동상을 걱정하던 이들이 지금 파상풍 걱정하며 공사장을 누빈다.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공사가 시
벚꽃 지고 이제는 라일락 온 데 피어 봄바람은 미세먼지 말고도 달콤한 향기를 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 코를 벌름, 오래전 팔던 껌 냄새에 취한다. 꽃 이름 붙인 대선이 코앞인가, 사거리에서 선거사무원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한다. 언젠가 촛불 든 사람들이 눈을 껌뻑, 승리의 기쁨에 잠시 취했던 광장에서 유력 주자는 희망찬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국회 뒷길엔 벚꽃 축제가 한창인데 거기 벚꽃이 많이들 수줍다. 피지 않은 꽃 아래 사람들이 옷깃을 여민다. 바람에 날린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워 악기 집에 넣느라 거리의 악사는 잠시 기타연주를 멈췄다.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음악회 현수막 걸어두고 무명 가수가 제 이름을 알렸다. 구성진 노래 뽑아 흥을 한껏 돋웠다. 외국인 관광객 꼬마 몇몇이 그 앞에서 손뼉
시인의 마을이 헐렸다. 광장에 촘촘했던 비닐 집은 비바람을 겨우 막았을 뿐이지만, 겨우살이 너끈했던 보금자리였다. 떠나며 시인은 노래했다. 민들레 꽃처럼 살아야 한다. 구슬픈 목청이 확성기 타고 광장에 퍼졌다. 거기 집에 갈 준비로 들뜬 촌민들이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기쁜 날 광장에 모여 쏘아 올린 불꽃놀이대를 마이크 삼은 동지가 베짱이 노릇을 함께했다.
숨죽인 수십여분 끝자락에 주문이 나왔다. 파면. 팔수록 쏟아지던 참상 앞에 오래도록 참담했던 사람들이 비로소 웃고 또, 울었다. 차 벽 너머 태극기 쥔 사람들은 기자를 때렸다. 철제 사다리로 내리쳤고 발로 밟았다. 카메라를 빼앗아 갔다. 거기 달린 노란색 리본을 떼서 먹으라고 입에 들이밀었다. 제발 알려 주세요. 왜 죽었는지. 그거 하나만 알려 달라는데.
꽃피는 춘삼월이라던데, 그게 다 음력 얘기였지. 광장에 흐드러지던 건 때아닌 눈발이었고, 때맞춰 불어온 드센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봄이 멀었다. 가만 서서 바람을 버티던 이들은 상을 받았다. 무대에 올라 활짝 핀 꽃다발을 품었다. 기가 찬 사연을 마이크 잡고 풀었다. 꽃으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오랜 바람을 외치며 행진하는 길, 맞바람이 매서웠다.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