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 생긴 지 33년 됐고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AA)가 시행된 지는 10년이 넘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해당 제도는 여성에게 구조화되고 관행화된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차별개선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하는 제도다.구체적으로는 500인 이상 고용한 대규모 민간사업장과 공공기관 등이 여성 고용 비율과 여성관리자 고용 비율을 업종 평균의 70% 이상으로 관리하도록 요구하
기본권은 국민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다. 그중에서도 노동 3권은 모든 노동자가 갖는 기본권이다. 필자가 이해하는 기본권은 타인 배려를 통해 보장받는 것이 아니며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유롭게 단결하고 사용자와 직접 교섭하며 때로는 사용자에게 대항하는 단체행동을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경험한 대다수 회사는 노동 3권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희생과 배려로 가능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최근 필자가 소속된 민주제약노조 신생지부의 첫 단체교섭이 있었다. 회사는 “저희는 노동조합을
뭘 쓸까? 학교비정규직노조에 5년째 몸담고 있으니, 비정규직 얘기를 할 수밖에. 그럼, 여전히 산업안전보건법도 지키지 않아 고발당한 교육청들을 욕해 볼까? 법만 지키면 고발을 취하하겠다는데도, 과태료 수천만원을 내게 생겼는데도 꿈쩍 않는 교육청들, 그중에서도 진보교육감이 재선·삼선에 성공한 경기도교육청·전라북도교육청이 공공연히 법 위반과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산업재해 사망 소식이 연일 뉴스에 나오고,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된 이 마당에 말이다.용두사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욕해 볼까? 공공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관련 뉴스가 쏟아지던 때 시사에 밝고 박식한 지인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기사는 내용부터가 이해하기 정말 어렵다. 만약 그게 기자의 의도라면 매우 성공적인 기사다”며 링크를 공유했다. 그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기사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내용을 확인했는데 노무사인 내가 보기에 기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실패는 필자의 문제도 독자의 문제도 아니었다. 엉망이라 할 만큼 복잡한 임금체계 때문이었고, 그 복잡함은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났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2018년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도입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2018년 12월 발생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망으로 인해 하청노동자 산업재해예방을 위해 도급인 안전책임을 강화하고, 유해·위험업무 사내도급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개선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그에 앞서 따져 볼 것이 있다. 과연 수많은 김용균들은 정말 하청노동자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수많은 김용균들이 “불법파견”으로 판단받
필자의 사무실은 우리나라에서 차별이 심한 곳 중 하나인 인천공항공사 근처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차별시정 사건을 상담할 기회를 종종 얻게 된다. 하지만 상담할 때부터 노동자들에게 “노동위원회에서는 인정받기 힘듭니다. 법원에 가야 이길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부터 시작한다. 차별시정 사건은 개인 노무사가 수임하기도, 인정받기도 사실상 어렵다.“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설명하면 비정규 노동자 대부분은 상당히 의아해한다. 현실에서는 임금을 비롯한 차별대우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무엇을 하고 지내냐”고 물어 요즘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해 줬다. 그러자 “생소한 것이라 잘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듯 대학원에 진학해서 시작하게 된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지역대비체계 구축’은 지인들 모두에게 생소했다. 나 역시도 처음에 그랬다.2012년 9월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고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누출된 불산가스는 근처 마을로 확산돼 농작물과 가축에게 피해를 입혔고 피해액이 약 177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사고를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투자협상, 소위 광주형 일자리 점정합의에 대한 노조 반발을 두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독일과 한국 비교가 등장한다. 결론은 한국 노조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광주시 투자협상 모델은 독일 폭스바겐 노사정 합의를 모델로 한 것이다. 왜 독일은 되고 광주는 안 되는 것일까.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네 가지를 짚어 본다.첫째 독일에는 있고 한국에 없는 것은 제도화된 신뢰 시스템이다. 두 모델의 핵심은 “현재 고통을 분담하고 미래의 번영을 함께 누리자”다. 가장 큰 차이는 노조가
노동법 교육을 할 때 기본적으로 하는 내용이 바로 노동시간이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특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주 40시간제로 부르는 것이 맞는지, 주 52시간제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면 답들이 나뉘는 것이다.근로기준법 50조(근로시간)에는 1항에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2항에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명확하게 ‘주 40시간제’인 것이다.그러면 왜 사람들은 ‘주 52시간제’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것은 일단 근기법 53조(연
최근 지역에서 열린 공동주택 상생방안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관리업체 관계자와 경비노동자·동대표 등이 함께했다. 발표자로 나온 법률전문가는 경비노동자 고용형태의 법적 쟁점 중 하나로 “경비원이 경비업무뿐만 아니라 재활용 분리수거와 주차관리, 택배관리 업무 등을 수행하는 경우 근로기준법 63조의 감시적 근로자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근기법 63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고용한 경비노동자에 대해 고용노동부에서 ‘감시적 근로자’로 승인받게 되면 근기법상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제외하고
2004년 법정근로시간이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기 시작했지만,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64시간[44(법정근로)+12(연장근로)+8(휴일근로)]에서 68시간[40(법정)+12(연장)+16(휴일)]으로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1주일은 7일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14년이 지난 뒤에야 법이 1주일은 7일이라고 규정했다. 이제야 정상적인 주 40시간제로 되돌아오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방심하는 사이 탄력근로시간제가 훅 들어온다.국회는 현행 2주, 3개월 단위로 시행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 또는 1년으로 늘리겠다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롯데하이마트가 삼성·LG·대우일렉트로닉스 등 납품업자로부터 인력공급업체 소속 판매사원 3천846명을 전국 지점에 불법적으로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화점·마트가 납품업자로부터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판매사원을 공급받아 전자제품·음료·식료품 판매업무를 수행했다면 ‘파견대상업무’ 위반, 즉 불법파견으로 사용사업주는 해당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불법파견 조장하는 대규모유통업법일반적으로 대규모유통업 판매사원이 고용돼 사용되고 있는 형태는 ① 드물지만 납품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중 ‘미래 나의 노동에서 보장받고 싶은 것’이 있는지 이야기했는데, 당시 꽤 많은 학생들이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고용안정을 택했냐는 필자의 물음에 한 학생은 “요즘 다 계약직이잖아요. 공부도 못하는데 나중에 저도 계약직으로 일하겠죠 뭐. 계약직은 쉽게 자를 수 있으니까 고용안정이 제일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중학생에게도 계약직이라는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이미 친숙한 개념이 돼 있었다.비정규직을
지난주 금요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 앞에서는 추워진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1등급 요양병원? 1등급 해고병원!"이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금천구에 위치한 이 병원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요양치료 잘하는 곳" 혹은 "1등급 병원 인정받은 곳"이라는 홍보글이 올라온다. 홍보글에는 해당 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1등급 요양병원’ 인증을 받았다는 내용이 빠짐없이 언급돼 있다.반면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 보면 홍보글과 전혀 다른 내용이 가득하다.
우리는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대등한 관계가 아닌 종속적인 관계에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따진다. 즉 누군가가 사장이나 업무지시자가 시키는 일만을 수행하고, 그 시키는 업무를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행위-업무 내용을 수정하거나 업무 완성 시기를 조정하는 행위,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행위 등-를 하지 못할 때 노동자답다고 인정받는다. 이런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판단, 지금 시키는 일이 정당한 업무지시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는 생각, 내 몸이 병들고 있다는 인지 등을 모두 이겨내고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냈을 때 우린
추석을 앞두고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과 강원랜드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추진하는 사장을 만나게 해 달라며 더불어민주당사에 들어갔었다. 이들은 한 달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를 가둬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집권여당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도 사장이 나타나지 않자 두 명의 노동자는 단식농성을 했다. 한 노동자는 건강 이상으로 단식을 중단했고 다른 노동자는 13일간 단식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데, 모두가 원했던 것을 한다는데, 왜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당사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고 했다. 대뜸 “녹취록이 있다”고도 했다. 제한된 토론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그래도 뜬금없는 ‘녹취록’이라는 말에 더 들어 보자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대화로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조합원들)이 무슨 대단한 권한이라도 가진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조직폭력배는 아니지 않습니까?”얼마 전 방송제작 현장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고자 열렸던 토론회에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대표로 참석한 토론
얼마 전 겪었던 일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어떤 분이 들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어봤더니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들러 봤다고 했다. 그냥 평범한 상담이겠거니 하고 일단 상담실로 들어가라고 안내해 드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 필기도구와 상담일지를 들고 상담실로 들어갔다.상담일지 양식에 따라 상담을 하기 위해 방문자에게 회사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방문자는 회사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상담을 하러 와서도 회사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노동자들이 워낙 많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열흘 가깝게 유례없는 최장기간의 연휴가 이어지던 지난해 이맘때가 생각난다. 긴 추석연휴 동안을 필자가 속해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의 임원진과 중앙집행위원, 그리고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삭발한 채 집단단식을 하며 거리 위에서 보냈다.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노조·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는 2012년부터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라는 연대체(공동교섭단)를 구성해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을 상대로 공동교섭과 공동투쟁을 진행했다. 2016년까지 시
노동은 결국 인권의 문제다. 노동하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동관계법이 과연 인권법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가고 있긴 한 걸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상담 중 “결국 법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네요” “결국 딱히 해결방법이 없다는 얘기시군요” “제가 참거나 회사를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같은 반응을 듣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 대답은 심정적으로 가장 듣기 힘든 대답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가장 듣기 싫은 그 대답을 자주 듣고 있다. 아래의 노동자들에게도 나는 그다지 속 시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