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려 쓸 때는 조심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회사의 업무용 컴퓨터는 한동안 나만 사용하다 보니 ‘내 물건’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그래서 업무용 컴퓨터로 친구들과 편하게 얘기하고 개인용 자료를 내려받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용 컴퓨터는 회사 물건이다. 회사가 사서 구입하고, 사업장에 보관돼 있다. 무엇보다 내가 자리를 옮기거나 회사를 나가도 컴퓨터는 남는다. 최근 담당했던 사건들에서 연달아 사용자가 징계 혐의가 있는 노동자의 업무용 컴퓨터를 포렌식해서 증거자료를 확보하고자 했다. 노동자들은 개인적인 자료는 다 지
1. “원장님, 고맙습니다.” 뜬금없이 이 무슨 말인가 했다. “회사에서 승소했다고 듣고 전화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고, 마침내 원고 노동자들의 승리가 확정된 것이다. 안부를 묻는 말에 그는 멕시코 공장에 파견근무를 하다가 귀국 중에 미국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서 연락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한참 법률학교 교안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던 터라 길게 통화할 수는 없었다. 통화를 마치고서 사무실 이 차장에게 물어 보니 조금 전에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판결로 피고 사측의 상고를 기각한 것을 확
굳이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수요와 공급에 대한 개념은 한 번쯤 듣게 된다. 이미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수요란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가 일정 기간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수요량이란 소비자가 구매하고자 하는 양이다. 반면 공급은 수요와 대칭적인 관계로 생산자가 각 가격수준에 대응해 공급할 의사가 있는 공급량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가격이 낮을수록 수요가 많고, 공급자는 가격이 비쌀수록 많이 공급한다. 이때 시장 수요량과 시장 공급량을 일치시키는 가격을 균형가격, 거래량을 균형거래량이라
자식 앞세운 엄마가, 동료 먼저 보낸 노동조 활동가가, 또 온갖 차별에 설움 복받친 비정규 노동자가 울고 더 울었다. 법원 앞에서, 분향소 옆에서, 어느 번듯한 원청 본사 앞길에서 꺽꺽 울음 먹고 버텼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어 눈물이 곧 영정 위로, 바닥으로 흘렀다. 금세 옆 사람 눈이 따라 붉었다. 같이 울었다. 설렁거리던 사진기자가 바닥을 기며 잠시 바빴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느라 눈에 힘을 주곤 했다. 웃을 일이 많지 않았지만 웃음이 없지도 않았다. 연대하러 먼 길 달려온 사람의 손을 잡고, 옷깃 여며 주
7기 청년유니온은 출범하면서 “책임을 다하는 노동조합, 새롭게 답하는 청년유니온”을 선언했다. ‘공정담론’처럼 격차와 불평등의 세계가 너무나도 정상적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왜곡된 담론 속 청년유니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소명했다. 미래와 노후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있는 지금의 동료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상상하고 꿈꾸기 위해서는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지역의 청년들에게 우리는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코인 투기에 나서며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은 답이 없다’는 무책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불평등과 차별,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경기도 연천군수가 지난 8일 조선일보 14면에 등장해 “지하철 뚫리면 발전 속도 낼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 인구 7만명에 달했던 연천군은 지금 4만1천명까지 줄었다. 동두천 소요산역까지 운영하던 지하철 1호선이 지난 16일부터 20킬로미터를 더 연장해 연천까지 들어갔다.아무리 지하철 개통을 앞둔 홍보성 인터뷰라지만 지하철 뚫리면 연천군이 발전한다는 단체장 발언은 답답하다. 지하철은 연천군민을 서울로 빨아들이는 빨대일 뿐이다. 결국 연천군은 서울 사람을 위한 새로운 베드타운이 되고 만다. 덕
비정규직 규모와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원자료가 지난달 말 공개됐다. 공개 직후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통계를 분석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각각 분석 보고서를 냈다.통계청이 지난 10월에 발표한 비정규직 비율은 37.0%다. 지난해(37.5%)에 비해 0.5%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비정규노동센터와 노동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비정규직 비율은 각각 41.0%, 41.3%였다. 역시 지난해보다 0.3%포인트, 0.1%포인트 감소했다.정부와 노동계의 비정규직 통계에서 가장 큰 차이는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
본지 2023년 12월11일자 14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부당징계 논란” 기사에서 카라 사측은 11월10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기에 바로잡습니다.
서울시 통합 노동권익센터의 민간위탁 우선협상 대상자 결과가 지난 14일 발표됐다. 필자가 속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순위로 밀려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와 함께했던 시간을 올해 말로 마무리하게 됐다. 그리고 12월 19일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난 1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평가하는 정기토론회를 진행했고, 필자도 참여하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 양극화는 심화했다. 수원, 전주, 울산, 대전, 청주, 서울, 안산 등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
지난 가을 서울교통공사노조가 받은 집회신고 부분금지통고 처분에 대한 총 3건의 집행정지 신청을 진행하며 세 명의 판사들을 만났다.첫 번째 집행정지 사건에서 노조는 서울남대문경찰서에 대한문 앞 인도 및 하위 4개 차로에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집회신고를 했고, 남대문경찰서는 신고 당일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에 대해 집회금지 통고를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2조에 따라 주요 도로에서 하는 집회이므로 출근 시간에 심각한 교통불편을 발생시킬 우려가 명백하다고 판단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집회가 최소한 오
보건복지부가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고립 상태에 있는 청년에 대한 정의는 연구마다 다르나,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는 고립 청년을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는 정서적 고립 상태 또는 대면교류가 적거나 없는 물리적 고립 상태에 있는 청년’으로 정의한다. ‘2022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와 통계청 사회조사를 통해 분석된 위기 징후를 보인 청년 비율은 5%다. 전체 청년 규모에 적용하면 54만명으로 추산된다.정부는 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의 문제를 방치할 경우 이들의 경제활동 포기로 인한 손실과 복지
1. “비정규직 규모가 줄고 차별이 개선되던 흐름이 윤석열 정부에서 뚝 멈췄다. 아니 거꾸로 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12월18일자 ‘윤석열 정부에서 나빠지는 비정규직의 삶’이라는 제목의 기사 첫머리를 이렇게 썼다. 지난 대선에서 특별히 노동존중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집권 노동존중 정책을 하겠다고 권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한 내용을 새삼스럽게 뉴스로 썼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무덤덤하게 읽었다. 기사는 17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간한 ‘비정규직 실태의 중장기적 변화 분석: 2001~2023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끝났다. 국제회의가 끝나면 으레 그렇듯 여기저기서 성과와 한계에 대해 분석했다. COP28 결과는 완전한 실패로 평가한다.COP28 성과로 평가할 만한 것은 세 가지다. ① ‘손실과 피해 기금’이 조성됐다 ② 재생에너지 설비를 3배 늘리기로 합의했다. ③ COP 합의문 중 최초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명기했다.성과를 자세히 풀이해보자.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과 피해에 대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조성해 지원하는 것이다. 전체 협약
친한 동기의 퇴사를 축하하며 술 한 잔 기울이던 어느 저녁,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열었다가 보게 된 부고 메시지. 나도 모르게 ‘헉’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놀란 나를 보며 동기들은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김민아 노무사님 돌아가셨대…’처음 노무사님을 뵀던 게 언제였을까?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의 기억으로는 2017~2018년쯤 국회 토론회다. 노무사님은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책자를 나눠주고 계셨는데, 많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어딘지 모르
본지 2023년 12월18일자 14면 “‘단협 해지 통보’ 유령 배회하는 건설현장” 기사에서 서울·경기·인천 철근콘크리트연합회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지 않았기에 바로잡습니다.
최근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던 원·하청 노동자 4명이 비소 중독 진단을 받고, 이 중 1명이 사망했다. 사실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① 영풍 석포제련소 노동자 투입↓② 비소 급성중독↓③ 사망자와 환자 발생①③은 논란의 여지가 없으므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②다. 어쩌다 비소 급성중독 사고가 발생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제련소에서 비소가스를 발생시키는 원인물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세 번째 사연은 ‘침묵의 살인자’ 비소에 관한 이야기다.사약의 원료 비소, 가스형태
단테의 에서 단테는 지옥의 문밖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 대해 묻는 단테에게, 지옥의 길을 안내해주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치욕도 명예도 없이 살았던 슬픈 영혼들이 이 비참한 길을 간다. 그들은 신에게 충성하지도 반항하지도 않고 거리를 두었던 비겁의 천사들과 이제 함께한다. 천국은 그 아름다움에 누가 될까 그들을 쫓아냈다. 깊은 지옥도, 죄인들이 그들을 보고 영광을 얻을 수 없도록, 그들을 들여보내기를 거부했다(단테 알리기에리 제3악장).”‘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CSDDD)’에 지난 14일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와 유럽의회에서 합의했다. 지침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유럽의회의 제안으로 2022년 2월 개시됐다. 이번 합의 의미에 대해 국제사회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첫째, 기업 실사(due diligence)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 대표의 역할이 강화됐다. 합의는 실사 전략과 실사 계획을 수립·실행하는 데 노동조
박정희 정권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를 중심으로 한 유신개헌으로 유신체제를 구축했다. 유신체제에서 박정희 정권은 고문, 폭력, 살인 등의 방법으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마저도 보호받을 수 없을 만큼 억압·통제적 정책을 자행했다. 머리 길이와 치마 길이를 국가가 제한하는 등 인간의 자유를 철저하게 탄압하고 통제했다.1970년대의 한국경제는 중화학공업의 육성이라는 전략 속에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양적 측면만 성장했을 뿐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또 비극이다. 이번엔 78살 이모와 50대 조카다. 전남 순천시 행동의 한 빌라에 살던 78살 여성 강아무개씨가 지난 7일 자신이 돌보던 50대 중증 장애인 조카 선아무개씨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조카 선 씨도 며칠 동안 못 먹어 탈진했다.이 집은 20일 이상 외부와 단절됐다. 조카 선씨는 지적 능력이 3~4세인 지적장애 1급이었다. 혼자 움직이거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순천시는 지난달 27일 숨진 강 할머니 집에 지원물품인 쌀을 가져갔다가 인기척이 없자 현관문 앞에 놓고 왔다.강 할머니는 조카가 3살 무렵부터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