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없는 공장에서 기타 만들던 임재춘씨가 오늘 세종로 오래된 천막농성장을 지킨다. 품 들여 구멍 곳곳에 뚫어 바람 지나기를 바란다. 묵은 짐도 치웠다. 여름 준비다. 이날로 4천145일째라니, 아마도 열두 번째 여름일 거라고 짐작했다. 오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미래에 올 지 모를 경영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헛웃음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에 컨테이너 높은 벽이 섰다. 분노한 시민의 행진을 막았다. MB산성이라 불렸다. 사다리 따위를 동원했지만 무리였다. 불법 엄포가 따랐다. 사람들은 다치거나 연행됐다. 거기 또 언젠가 경찰 차벽이 빈틈없었고 최루액 물대포가 바닥에 꽂혔다. 밧줄 따위가 나왔지만 무리였다. 우산은 찢어졌고 버틴 사람들은 바닥을 굴렀다. 다치고 연행되고 죽었
전북 군산 문 닫은 자동차공장 안 무재해 기록판에 초록색 칸이 늘어 간다. 5월도 지금껏 무사했다. 생산라인 멈춘 공장에 드나드는 사람이 뜸하니 무재해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초록 풀도 늘어 간다. 사람 발길, 손길 닿지 않는 자리면 어김없이 그렇다. 멈춘 공장 빈터마다 우거졌다. 봄꽃 진 자리엔 여름 들꽃이 피었다. 공장 주변 농성 천막과 현수막이 다
낯선 땅 평양에서 열린 공연 제목이 ‘봄이 온다’라기에, 또 이런저런 꽃 피기에 봄이 왔구나 했다. 웬걸, 며칠 푹푹 찌더니 번개 친다. 곧 천둥소리 따랐다. 장맛비 같은 비가 쏟아진다. 앞이 캄캄하다. 땀이 많아 슬픈 사진기자들은 뜨겁거나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만나 서로를 도닥인다. 서머 이즈 커밍, 고난의 계절 여름 앞이다. 눈으로 흘러든 땀은 쓰렸다.
봄이라고 강변이며 또 어디 공원에는 원터치 텐트가 빼곡하다. 발 뻗기도, 앉기도 빡빡한 그 좁은 곳에서 연인은 나란히 다정했고, 뛰놀다 지친 아이들이 누워 뒹굴다 잠들었다. 식어 빠진 치킨에 김빠진 맥주라도 곁들이면 만찬이었다. 민들레 홀씨와 흙먼지쯤은 양념이었다. 오늘 세종로 소공원이며 정부서울청사 앞에도 텐트와 돗자리며 농성 천막이 빼곡하다. 소공원 쪽
평소 아이를 돌봐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멀리 사는 엄마가 말했다.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아쉬울 때가 있다. 노동절에 출근하려는 데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가슴 졸여야 했다. 가깝지도 않은 처가에 아쉬운 소리를 좀 했다. 장난감 선물 인심 후한 할머니 품에 안겨 아이는 하루 잘 지냈다. 품에는 평소 노래를 부르던 변신 공룡을 끼고 있었다. 장난감 쇼핑에 심취했던지 마트에서 그만 바지에 쉬를 했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 팬티와 바지 입고 아이는 저녁 내내 신났다. 마음이 놓였다. 할머니는 해결사였다. 할머니 등은 편안한 침대였고, 할머니
어린이집 소풍날 아침, 도시락 가방 싸는데 저 원하는 포크와 숟가락 따위 골라 가며 꼼꼼하게 참견하던 아이가 어제 산 지도 위에 엎어져 뒹군다. 하나 배웠다고, 여기가 우리나라라며 가리킨다. 나라마다 선으로 나뉘어 있단다. 과연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선은 거기 지도에 없었다. 아이 보기엔 한 나라였다. 서울에서 평양 거쳐 대륙으로 뻗는 길도 구불구불 이어져
늦은 벚꽃 바람에 날려 마석 모란공원 오솔길이 꽃길이다. 노조 조끼 입은 사람들이 그 길 따라 올랐다. 손에 든 비닐봉지엔 사과와 배, 소주 따위 제수가 들었다. 길옆으론 진달래가 피었다. 꽃 떨군 자리에는 연초록 새잎이 돋아나 봄볕에 반짝거렸다. 무덤가에도 봄이 깊었다. 일행은 검은 비석 앞에 머물러 절을 했다. 소주를 따랐다. 종범아 맘 편히 먹어라, 약속 지켰다. 노조 지회장이 혼잣말했다. 비석에 새긴 사진이 참 이상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쪽저쪽에서 봐도 자기를 쳐다본다는데, 사진기 든 사람들 답이 흐릿해 또 혼잣말에 그쳤다.
머리 위 냉면 국물은 찰랑거릴 뿐 넘치는 일이 없다. 흐트러짐 없이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는 마치 패션쇼 런웨이의 그것과 닮았다. 하루 이틀 솜씨가 아닐 테다. 오랜 노동의 성취였다. 시장통 흔한 풍경이다. 늙은 엄마도 한때 고춧가루며 참깨 자루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 한 손엔 비닐 주머니를, 또 한 손으로는 어린 자식 손을 잡아 챙겨야 했으니 곡예는 필요한
동료 영정을 든 사람들이 서울 서초동 높은 빌딩 앞에 모여 죽음의 이유를 물었고 삼성 깃발을 불태웠다. 소화기 든 경찰이 뛰어들어 불을 껐다. 연기가 자욱했다. 눈 벌건 사람들이 차 벽 앞에서 울었다. 노조 탄압 때문이었다고 외쳤다. 2013년의 일이다. 노조 출범 4개월이 채 안 된 때였다. 그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공개됐다. 노조와해 전략과 문제인력 이름이 거기 빼곡했다. 흐지부지, 미제로 남았다. 다음해 5월, 또 사람이 죽었다. 남은 사람들은 상복 입고 길에서 한 가족처럼 살았다. 곧 사람들 기억에서 잊
비닐을 깔고 침낭을 늘어놓으니 저기 어두운 밤 누울 자리다. 휴업 1년여, 할 일이 없으니 못 할 일도 없었다. 천장 없는 노상이었지만 마른자리였고, 낮이면 봄볕 아래 따뜻했다. 보송보송 잘 마른 침낭에 들어 잠들기 전, 집에 전화 한 통을 잊지 않았다. 말이 길지는 않았다. 낮이면 효자로 따라 걸었다. 청와대 100미터 앞에 주저앉아 버티기를 이어 갔다.
평택 자동차공장 앞에 예쁜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차차’다. 거기 봄볕 들어 꽃과 나뭇잎에 알록달록 생기가 돌았다. 온기 가득했다. 지난밤 몰아치던 진눈깨비에 젖은 조끼를 말리고 정리하던 남자는 쉴 줄을 몰라 또 형광등을 갈았다. 모든 동작엔 절도가 배었는데 그게 다 차 고치던 솜씨라고 했다. 카페에 왔으니 차 한잔 하라고, 차 만들던 누군가가 차를
동네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녔다던 언젠가의 도시 전설은 이제 괴담의 양념이 됐다. 동네 꼬마들도 법정관리며 구조조정을 말한다. 어른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다닌다. 문 닫은 배 공장 앞 불 꺼진 식당 출입문 앞에 급전 일수 명함이 쌓인다. 잔뜩 웅크린 길고양이가 제자리인 양 거기서 껌뻑껌뻑 졸고 앉았다. 그 앞 북적이던 정형외과 의원 대기실이 한가롭다. 삐뚤게 내려앉은 호프집 간판이 바람에 삐걱거렸다. 짠내 품은 봄바람이 억셌다. 어김없이 선거철, 희망찬 미래는 여기저기 나붙은 정치인 현수막에 담겼다. 조선업 살리겠다던 오랜 약속은
배 짓는 공장 요란한 쇳소리에 자주 사람의 비명이 섞였다. 끼이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떨어지는 사고가 잦았다. 불꽃 튀는 사선에서 기고 오르고 등 굽어 가며 기름밥을 벌었다. 죽지 않고 살아 그럴싸한 제집을 마련했고 거기서 사람을, 또 사랑을 키워 갔다. 기저귀 사고 학원비 내고 이자 원금 갚느라 빠듯했지만, 종종 다 같이 고깃집 들러 불도 쬈다. 할부로 마
까치집은 흔하다. 근린공원이며 주택가 나무 위에 크고 작은 둥지가 많다. 거기 매해 고쳐 가며 오랫동안 까치가 산다. 텃새다. 익숙해 관심 끌 일도 없다. 고압선 주변 전신주에 지은 둥지가 정전사고를 일으켜 가끔 뉴스에 오른다. 설날 즈음이면 노래 배운 아이들이 반짝 관심을 둔다. 굴뚝도 흔하다. 크고 작은 공장에, 또 주택가 한편에 열병합발전소 굴뚝이 적지 않다. 겨울이면 연기 더욱 선명해 눈에 띈다. 대개는 익숙한 풍경에 그쳐 관심 끌 일이 없다. 언젠가부터 연기 나오지 않는 굴뚝에 사람이 올라 산다는 뉴스가 돌았고, 설날 즈음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경인고속도로 서인천 나들목 옆에 한국지엠 사원아파트가 있다. 지도엔 대우자동차가정아파트로 나온다. 동네 주민도 그렇게 부른다. 버스정류장 이름에도, 그 앞 슈퍼마켓 간판에도 대우가 붙었다. 단지 안 주차장에 빼곡한 차 머리엔 똑같은 상표가 붙었는데, 종종 대우차 시절의 것도 보였다. 외벽엔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마크가 선명하다. 회사
광장에 비둘기 한 마리 잔뜩 움츠린 채 꼼짝하지 않는다. 햇볕 아래에서 추위를 피한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30년 전 88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3천여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평화의 상징이었다. 성화대에 앉았던 몇 마리가 화염 속에서 타들어 갔다. 88년 비둘기 참사로 불린다.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오늘날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비둘기 모양 풍선
옛 조선의 궁궐 문 앞에 수문장 교대의식 재연배우가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두 시간에 1만원 하는 한복 빌려 입은 관광객들이 그 옆자리에서 환한 표정으로 사진을 남긴다. 두꺼운 점퍼 겹쳐 입고 시린 손 녹여 가며 부리나케 자릴 뜬다. 바람에 날린 깃발이 뺨을 때려도, 옷자락이 뒤집어져도 문지기는 가만 섰다. 근엄한 표정에 변화가 없다. 옛 왕실의 권위를
농성장 비닐에 바람 들어 풍선처럼 부풀었다. 비정규직 철폐 부푼 꿈 새긴 조끼 입고 사람이 거기 산다. 정규직 전환하랬더니 대량해고 사태가 잇따른다. 풍선효과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만큼 분노가 높아 말이 점차 사납다. 북극발 한파 속 칼바람 사나운 길에 이글루 짓고 버텨 시위한다. 고난을 스피커 삼았다. 오랜 학습효과다. 여기저기 노숙농성장이 불룩, 풍선처럼 부푼다.
정동길 어느 수도회 건물 1층 카페에서 노동조합총연맹의 간부가 휴지 조각에 글을 적는다. 기자들이 묻고 위원장이 답했는데, 궁금한 것도 할 말도 적지 않았다. 받아 적느라 네모난 휴지 여러 장이 어느새 빼곡하다. 받아치느라 노트북컴퓨터 타자 소리 요란한 카페에서 그 모습이 낯설었다. 익숙했던 손글씨가 유물 같다. 연인과 마주 앉아 마냥 설레었던 찻집에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