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8일 고용노동부는 ‘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화물자동차 운전자 사고 처리 지침’이라는 매우 긴 이름의 지침을 발표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화물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을 일정요건이 되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침이 마련되기까지 화물노동자의 끈질긴 문제제기와 노력이 있었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계약업무 외의 업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는지, 둘은 직접적 또는 관행적인 업무 지시가 있었는지다.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고용한 일용직 또는 단시간 노
위중한 국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후폭풍, 특히 일자리에 미칠 타격은 이제 그 잔인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코로나19 사태만큼이나 미증유의 사회적 재앙에 직면할 것임을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현장, 지역마다 위기의 형태를 달리할 것이기에 중앙정부의 대응책만으로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전북 전주에서 있었던 “해고 없는 도시”를 위한 상생선언은 그래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전주시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직면한
코디는 코웨이에서 렌털·판매한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같은 생활가전 정기점검이나 필터교체 업무를 하는 노동자다. 코웨이가 생활가전 렌털사업을 이어 가게 만드는 필수업무를 담당한다. ‘정기점검업무 한 건당 얼마’로 정해져 있는 점검수수료와 방문점검시 고객에게 새로운 렌털제품 판매에 성공한 경우 받는 판매수수료를 매월 급여로 지급받아 생활하고 있다.코디의 수수료는 회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코디들은 소속된 지국별 실적경쟁을 위해 제품 판매를 강요받기도 한다. 1년 단위로 갱신되는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코디는 ‘계약갱신 거절’이
28일은 국제자유노련(ICFTU)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태국 인형공장 화재로 발생한 노동자 188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날이자,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전 세계 노동자를 기억하는 날이다.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은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에만 855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생계를 위해 일터로 향했을 이들은 떨어지거나, 끼이거나, 깔리거나, 부딪혀 사망했다. 화재나 폭발·익사·질식사고를 당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반복적인 산업재해 사망과 시민 재해를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노동자 건강권운동 영역에서 2006년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소개되고, 해마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고발도 하고, 법 제정 요구도 했다. 민주노총은 2011년부터 ‘하청산재 원청의 책임과 처벌강화’를 핵심 요구로 정하고 벌써 10년째 산재사망 처벌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2012년에는 법률·건강권 단체와 연구팀을 만들어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안을 준비해서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상정 민주노동당(현
1899년 우리나라에서 철도가 개통한 뒤 철도노동자 2천456명이 산재로 숨졌다. 매년 21명이 숨진 셈이다. 통계에는 비정규직이나 자회사·협력업체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면서도 정작 철도·지하철 노동자는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노동안전보건 전문가들이 궤도노동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보내왔다. 지난해 10월 밀양역 인근에서 일하던 선로보수 작업자들이 열차에 치였다. 25년 가까이 철도에 몸담았던 베테랑 직원은 유명을
헌법 32조4항 전단은 ‘여성 노동의 특별한 보호’를, 헌법 36조2항은 ‘국가의 모성 보호를 위한 노력’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70조(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2항은 “사용자는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법 65조(사용 금지)1항은 “사용자는 임신 중이거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여성과 18세 미만자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한다”이고, 2항은 “사용자는 임산부가 아닌 18세 이상의 여성을 1항에 따른
‘노동복지’란 말은 듣는 이에게 크게 두 가지 뜻으로 들린다. ‘노동자를 위한 복지’라는 말과 ‘일자리 그 자체’ 둘 중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될수록 후자로 이해한 사람들의 상담 전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차라리 무급휴직이 낫지”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일자리를 장기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된다. 얼마 전 한 50대 후반 남성은 내게 하소연했다.“안 그래도 일용직 일자리 얻기가 힘든데 요새 더 힘들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러 갔어요. 처음에 엄마가 내 부양의무자라서 안 된다고 하
지난 12일 고용노동부가 ‘콜센터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지침’을 시행하며 전국 1천358개 콜센터 긴급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다.이에 따르면 먼저 전국 콜센터 실태를 신속히 파악하고, 사업장 규모별로 자체 점검, 사업장 방문, 전담 근로감독관 지정 등으로 구분해 지도·점검과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한다. 한편으로 중앙정부·지자체·공공기관에서 위탁·운영하는 콜센터 156곳은 해당부처 등이 관리를 강화하고, 금융기관·통신회사·홈쇼핑 등 콜센터를 많이 활용하는 업체에는 소관부처와 협의해 감염병 예방관리를 강화한다.그러나 노동부는 50명 미만
최근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를 대리해 사건을 진행하다 생긴 일이다. 고용노동부 관할 고용노동지청의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연락이 왔다. 결론적으로는 사용자와 합의해 보라는 취지였지만, 그 대화 내용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됐다.“직장내 괴롭힘 조항 자체가 현실적인 실효성이 없잖아요. 검찰에 넘길 수 있는 건도 아니고. 법 자체가 실효성이 크게 없거든요. 괴롭힘 사건을 처리하게 되면 보통 ‘법이 이거 밖에 안 되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라는 얘기였다.근로기준법 76조의2와 같은 법 76조의3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
지난해 산업재해 신청은 14만7천678건이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2017년과 비교해 3만4천건 넘게 증가했다. 산재보험급여를 받는 수급자는 같은 기간 3만7천여명 늘어난 32만184명이었다. 산재보험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보상을 받았다.근로복지공단은 산재신청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그동안 걸림돌로 지적됐던 ‘사업주 확인제도’를 폐지했다. 신청서식도 간소화해 45개의 기재항목을 27개로 과감히 줄인 바 있다. 산재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한 뒤 처리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휴대전화 메시지 같은 알림서비스를 전면 개편
오랫동안 소음성 난청은 보상을 받기 어려운 직업병이었다. 다른 신체부위 장해에 대해서는 치료를 받고 난 후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내려진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하면 됐는데 유독 소음성 난청은 “진단일”이 아닌 “사업장을 떠난 날”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소음성 난청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즈음이면 이미 사업장을 떠난 지 3년이 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이런 모순에 대해 대법원은 2014년 9월 소음성 난청 역시 진단일을 기준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후로도 1년 동안 산업재
심리학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가 100명 넘게 줄어든 것을 발표하면서 행정기관 관리·감독이 사망사고 감소의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하고 올해에도 지난해와 같은 기조로 확대·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고사망의 큰 감소에 고무됐는지 다른 해와는 달리 연초에 통계와 대책을 발표했다.문제는 과학적인 진단과 분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꿰맞추기식 설익은 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사망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환경 분석이 빠져 있다. 어떤 현상을 분석
지난해 11월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경마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개장 이후 일곱 번째 죽음이다. 말관리사 282명, 경마기수 35명 등 320여명이 일하는 한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다. 한국마사회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이 그간 죽어 간 노동자들의 유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통도 없고 편히 숨 쉴 곳엘 가기 위해…”(이명화 기수, 2005년 사망당시 26세), “경마장 기수들이 최고 힘들고 불쌍해.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의 자살 시도냐”(박진희 기수, 2010년 사망당시 28세)
지난 11일 서울시교육청은 기간제교사에게 보직·담임 업무 떠넘기기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기간제교사가 기피업무·과중업무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017년 기간제교사노조가 실시한 “시급히 해결돼야 할 차별”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기피업무·과중업무 분장이 두 번째로 지목됐다.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보직교사(학교에 있는 각 부서의 총괄 책임을 맡은 부장교사)를 맡고 있는 기간제교사가 52명이다. 이는 전체 보직교사수에 비하면 소수지만 이 중 절반이 기피업무인 생활지도부를 맡고 있는 게 문제다.생활지도부는 사안이 발생하
새벽 5시20분 부산히 움직이는 청소기구, 물건을 나르는 수레바퀴 소리에 잠이 깬다. 가장 먼저 눈 비비고 일어나 농성장에 마련된 고공농성 현황판에 213이라는 숫자를 갈아 끼우고 그 옆에 세로 현수막에 ‘단식농성 21일째’ 날짜를 붙인다. 그리고 두 개의 몸벽보에 “단식농성 21일차” “단식농성 17일차” 종이를 붙인다. 그리고 동조단식자를 위해 몇 개의 몸벽보를 정리하고 낮은 책상과 의자를 정리한 뒤 현관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어둠이 진하다. 건물 외벽에는 “영남대의료원 개원 40주년, 의대 교수 1인당 논문 실적 3위”라는 초
경기도 평택시가 올해 5월 여는 민원상담콜센터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려는 것으로 확인됐다. 평택시는 지난 28일 콜센터 구축사업 최종보고회를 진행하고 올해 3월1일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 34개월 동안 민간위탁하겠다는 내용의 동의안을 평택시의회 임시회에 제출할 예정이다.콜센터의 경우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 중 2단계 ‘용역’에 해당하는지, 3단계 ‘민간위탁’에 해당되는지 논란이 있었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콜센터 상담사들을 3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했고 이마저도 지난해 2월27일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1월22일은 당시 노태우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을 뚫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결성된 지 만 30년이 되는 날이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바뀐다는 세월이니 결코 짧지 않는 세월이다. 그만큼 전노협에 대한 기억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엷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난 아직도 온몸으로 생생하게 전노협을 기억한다. 화석에 새겨진 기억처럼.1988~89년 노동자들은 “악법 철폐! 건설 전노협!”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40여년 동안 자본과 권력과 결탁해 유일노총 지위를 누리며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관제·어용조직이었던 한국노총을 노동자들은
한국노총 27대 임원선거가 1월21일 치러진다. 김만재-허권(위원장-사무총장) 후보조와 김동명-이동호 후보조가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2월부터 한국노총을 이끌게 될 임원들에게 바라는 점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보내왔다. 선거 과정에서 소통과 토론이 활발해지길 기대하며 지면에 싣는다. 한국노총 27대 임원선거가 한창이다. 노동조합에서 선거는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조직 내 민주주의의 축제지만, 한국노총의 이번 임원선거는 사뭇 분위기가 비장하다. 창립 이후 줄곧 유지해 오던 1노총 지위를 잃은 직후 조직 안
한국노총 27대 임원선거가 1월21일 치러진다. 김만재-허권(위원장-사무총장) 후보조와 김동명-이동호 후보조가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2월부터 한국노총을 이끌게 될 임원들에게 바라는 점을 현장 조합원이 보내왔다. 선거 과정에서 소통과 토론이 활발해지길 기대하며 지면에 싣는다. 한국노총 지역상담소에 배치돼 근무하면서 가끔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던질 때가 있다. 나는 한국노총 사무총국 간부인가, 아니면 사무총국 언저리에 있는 변방의 간부인가? 상대적 자괴감일 수 있는 이런 물음은 전국 각 지역에서 상담업무를 하는 나 같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