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목사로도 알려진 칼 귀츨라프(Karl Gützlaff)는 오랫동안 중국에 머물다가 태평천국운동이 벌어질 무렵 20년 만에 유럽 사회에 돌아왔을 때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접하게 됐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그는 놀라서 외쳤다. “나는 그 유해한 교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가? 바로 이와 동일한 것이 중국에서 많은 폭도들에 의해 한동안 설교됐다!” 칼 마르크스는 이 일화를 그저 ‘양극단은 일치한다’는 변증법의 원리를 증명해 주는 사례로 넘겨 버렸지만, 이 문제는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역사
1. 응답자들은 ‘노란봉투법 부활’를 올해 가장 주목할 노동이슈로 뽑았다고 지난 2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노사정·전문가 100명에게 2024년 주목할 노동이슈와 인물에 관한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와 3조에 관한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아 1위를 기록했다.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일부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성사하지 않았지만 올해에도 노동현안으로 대두할 전망”이라며 밝히고
”나쁜 놈들 변호할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약 4년 전, 변호사가 회원 대다수인 노동법 공부모임에서 질의에 답변하던 강연자가 자신도 궁금한 게 있다며 그 자리에 있던 변호사들에게 한 질문이다.그날의 강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질문만큼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튀어나온 그 질문은 솔직하고 노골적이라서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변호사가 분별력 없이 아무 사건이나 맡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지적이라고도 느꼈다. 예상 외의 질문인지 청중들 사이에 약간의 당황과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고 대형로펌의
장정을 시작한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쟁, 사회적 대화가 주제다. 사회적 대화는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입구에서부터 삐걱거리는가 하면 구성과 운영, 의제 선정과 논의, 그리고 결과의 이행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전주기(life cycle)가 지뢰밭이다. 20여년에 걸친 사회적 대화가 무색하리만치 어느 하나에도 ‘사회적 합의’는 없다.사회적 대화에 대한 견해는 노동 연구자나 활동가의 성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예민하면서도 본질적이다. 사회적 대화에 찬성하면 개량주의자이거나 친정부적이며, 반대하면 노동의 전투성
정정운운(政政運運)정치(政治)는 정치답고 운동(運動)은 운동다워야 한다. 정치를 운동처럼 하고 운동을 정치처럼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정당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공동체를 유지하는 제도화가 중심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운동은 사회운동을 의미하며 다양한 시민이 권리 주인으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는 주체화가 중심이다.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모든 것을 정치라고 본다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영역이 없다. 만물이 운동하기에 정치도 운동이며 정치개혁‘운동’이나 진보정당‘운동’처럼 정치와 운
대구청년유니온 노동상담소에 어느 순간 ‘프리랜서’들의 상담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상담 유형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답변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프리랜서들의 법적 지위는 ‘1인 자영업자’로 분류되고, 1인 자영업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대구청년유니온은 ‘프리한 유니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근 청년 세대에서 많이 보이는 노동 유형인 프리랜서 노동 현실을 당사자와 함께 알아보고, 프리랜서 노동권 개선 활동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프리한 유니온’ 프로젝트로 프리랜서 커뮤니티 활동, 프리
지난달 27일 매일경제신문 12면에는 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실렸다. 횡재세 무용론을 ‘주장’하는 기사를 마치 객관적 사실을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보도했다.사설로 쓸 글을 이렇게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보도할 때 언론은 꼭 빠져나갈 안전장치를 만든다. 기자 개인의 주장이 아닌 취재원의 주장을 담았다고 포장한다. 이때는 쌍따음표만큼 유용한 게 없다. 내(기자) 주장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말하니 나는 객관적으로 소개할 뿐이라는 거다.이날 기사는 한국경제학회 설문조사를 옮겼다. 설문은 학회 패널위원 4
메밀은 구황(救荒)음식이다. 흉년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굶주림에 허덕이던 극빈층을 구했다.절구질·맷돌질로 메밀가루를 만들었으니 빻고 가는 행위는 생존 그 자체였다. 강원도는 곳곳이 1970년대 내내 전기가 엄청 귀했다. 깊은 산골에서 고운 메밀가루를 만들기란 불가능했다. 메밀의 겉껍질을 벗긴 것을 녹쌀이라한다. 녹쌀은 전기를 이용한 제분 시설 아니면 만들 수 없다. 겉껍질 채로 절구질·맷돌질을 해서 메밀가루를 만들었다. 면 뽑는 유압식 기계는 1980년대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분틀 형태였다. 이를 그대로 재현한 곳이 강릉 ‘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1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찬 이 순간이 4년 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의 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변희수 하사다. 2017년부터 육군 부사관으로 군에 복무하던 변희수 하사는 성별 위화감으로 군 병원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를 받으며 성별 정정 과정을 밟기로 마음먹고, 부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소속 군단장으로부터 성확정수술을 위한 국외 휴가 허락을 얻은 변희수 하사는 2019년 11월 수술을 받았고, 복귀해 여군으로 군 복무를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군은 변희수 하사를 트랜스젠더(태어났을 때 지정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분노에 잠겨 있던 지난해 말에 반가운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은 쏘카㈜가 운영하는 실시간 차량·기사 호출 서비스인 ‘타다’의 운전기사가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2022년 1심인 서울행정법원이 계약형식만 살펴 타다 운전기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 데다가, 6개월 전에는 타다 서비스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지라
‘직장내 괴롭힘 금지’가 근로기준법에 명문화된 지 5년여가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직장내 괴롭힘의 ‘피해자’들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피의자’가 되고 유죄판결까지 받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다.A씨는 입사한 첫날부터 선임자에게 ‘그림자’ 취급을 받았다.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는 A씨는 전공을 살려 적극적으로 필요한 일을 찾아서 했는데, 선임자는 자신이 그동안 외면해 왔던 일들을 A씨가 나서서 하니 눈엣가시로 여겼던 것이다. 선임자는 A씨가 무슨 일을 하든 꼬투리를 잡고 “야, 너, 영업하던 새끼가 무엇을 아느냐”며 모멸적 언사를 서
실업급여를 두고 말이 많다.지난해 7월 정부와 국민의힘은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어 한국은 실업급여 하한액이 높고 지급요건이 관대하다며 부정수급을 특별점검하고 하한액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처럼 쓰이면 안 된다며 “시럽급여”라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현실에 “시럽급여”는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이들이 논의한 실업급여 역시 한국에는 없는 제도다. 구직급여가 있을 뿐이다. 공청회 이후 정부는 노동개혁을 한다며 구직급여 제도를 만지작거린다. 이미 국회에 구
1. “21시간30분까지 일해도 된다는데요.” 나는 무슨 말인가 했다. 1주간에 12시간까지로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53조의 연장근로 제한규정이 1일 근로(초과)에는 적용되지 않고 1주간 근로(초과)에만 적용된다고 대법원 판결이 선고됐다며 한 방송사 기자가 전화를 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대법원 판결로 이제 이 나라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이렇게 21시간30분 동안 장시간 근로를 시켜도 되게 됐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다고 기자는 말했던 것이다.“21시간30분이 아니라 24시간, 30시간, 그 이상까지도 계속해서 일해도 된
50명(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정치적 상황에 따라 법 적용유예가 연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장된다면 유예기간 동안 50명 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 수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컨설팅 지원, 산업재해 절반을 차지하는 3대 재해와 8대 요인에 대응 사업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그럼에도 사업장 안전보건을 개선할 사업주 의지와 계획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업주 의지가 없으면
동일방직 똥물사건김영태 섬유노조 위원장은 1977년 말부터 지부 파괴를 위한 구체적인 공작을 진행했다. 섬유노조는 조합원을 강제로 교육에 동원해 “동일방직지부 집행부는 불순세력인 산업선교회 앞잡이”라고 매도했다. 섬유노조는 1978년 1월22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규약 중 사고지부 수습절차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주요 내용은 섬유노조 자체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산하 지부나 분회를 사고조직으로 규정할 수 있고 사고조직으로 규정되면 본부가 임명한 수습위원에게 조직 대표자 권한과 업무 일체를 즉시 인계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노총은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3년여 만에 재야에 첫 대화를 요구했다. 2021년 2월 쿠데타로 수치 여사의 합법 정부를 무너뜨린 군부 최고사령관이 지난 4일 “국민의 삶을 고려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자”고 말했다.소수민족 중심의 무장 반군이 미얀마 북부 여러 주에서 군부 기지와 주둔지 300여곳을 탈환하는 바람에 전세가 역전되자 나온 궁여지책이다. 외신은 군부가 패색이 짙어지자 출구전략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는 휴전과 대화를 촉구했지만, 군부는 2년 넘게 막무가내였다. 외신은 이번 유화책도 군부의 이중 플레이라고 혹평했다.(한국
경기도 부천의 어느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양아무개씨는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20여년간 복지관에서 노동자 문화프로그램을 고민하고 회원들의 불편사항을 듣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50대 중반에는 고령 노동자 재취업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에 힘썼다.젊은 시절 다녔던 직장보다 임금은 적지만 사회공익적 가치가 큰 직업이라 보람의 가치는 컸다. 그렇게 일에 매진하다 그 역시 60세 정년을 맞이했고 이제 이 사회복지관에서는 마지막 한주를 남기고 수십 년의 활동을 정리하고 있다. 퇴직을 앞둔 양씨에게 정년
작은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위험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빼앗겨야 하는 것일까.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더 쉽게 해고되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데도 근로기준법이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체계와 안전보건교육도 제외된다. 전체 산재사망자의 60% 이상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하는데, 정부는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또다시 2년 유예하겠다고 말한다. 처음 시행을 유예할 때 작은사업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달더니 지금에 와서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은 사용자가 노조의 정당한 단체교섭 요구를 부당하게 거부할 때, 노동조합이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내가 이번에 맡은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의 상대방인 사용자는 주식회사 좋은책 신사고다. 어릴 적 누구나 풀어 봤던 수학 문제집 을 출판하는 곳이라 익숙했다.사용자가 부당하게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있으니 이에 응하도록 하는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파악할수록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23년에도 이런 사용자가 존재하는구나.’언론노조 좋은책신사고지부는 2022년
연극 는 어느 날 잠에서 깬 인물이 간밤에 꾼 어떤 악몽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이 꾼 악몽 속에 이 세상을 망치는 것들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있다고 단언한다. 불현듯 직장을 때려치운 그는 악몽제거협회를 만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무한(惡無限)에 빠져든다. 작가와 연출, 배우들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잠언을 변용해 모순에 맞선 동시대의 어긋난 접근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듯하다. 니체는 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