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5일 오후 본회의를 열었다. 18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윤호중 법사위원장, 윤후덕 기획재정위원장,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 민홍철 국방위원장, 이학영 산업통상자원위장, 한정애 보건복지위원장을 선출했다. 미래통합당은 본회의에 불참했다. 대신 국회 로텐더홀에서 항의 피켓시위를 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는 성공회성당 건물 앞으로 1천300여년 전 만들었다는 첨성대를 본딴 조형물이 섰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고 전시 기획자는 알렸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검은 구름 두텁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바깥 일을 미룰 수도 없었을 터, 그 앞 일하는 사람 등이 젖는다. 이미 땀에 젖은 티셔츠에 빗방울이 별 일도 아니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사진 왼쪽 첫째)이 3일 국회 앞에서 ‘전교조 무력화 방안’ 문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국정원이 지난 2010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다. 그는 “국정원이 전교조를 해산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공작하고 범죄행위를 했다는 것이 최근 재판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가운데)도 국정원 사찰 피해를 증
서울지하철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다시 포스트잇이 빼곡 붙었다. 혼자서 안전문 고치다 죽은 김군의 4주기, 닮은꼴 죽음이 멈추질 않아 거기 적힌 내용이 처음과 다를 바 없다. 그 앞 죄지은 듯 고개 숙인 사람들 얼굴에 마스크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실은 그게 다 익숙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날마다 명복을 빈다. 새로운 죽음 앞에 지난 죽음을 떠올리
밥 짓느라 거칠어진 저 손은 밥 버느라 휘고 군살 깊어 볼품없다. 비행기가 내리면 헐레벌떡 뛰어올라 기내식 음식쓰레기 자루를 단단히 묶고 들고 옮겼다. 화장실 오물을 치우고 쪼그려 앉아 구석진 곳을 닦느라 손이 내내 바빴다. 일손이 늘 부족했다. 밀려드는 비행기 스케줄 따라 일터는 도깨비시장이었고 전쟁통, 아수라장이었다고 손 임자가 전했다. 고래심줄만 살아
언젠가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청년 하청노동자가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여 죽었다. 유품으로 남은 컵라면을 들고 사람들이 울었다. 또 언젠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청년 하청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말려 죽었다. 사람들이 컵라면을 쌓아 두고 엉엉 울었다. 왜 자꾸 죽는지를 길에서 물었다. 돈 때문이었다고, 누구나가 아는 답이 짧았다. 책임을 묻고 대책을 만드는 일이
제자들 없는 텅 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쓸쓸한 스승의 날을 맞았다는 기사가 난다. 코로나19 시절의 풍경이다. 노조할 권리 없는 선생님들이 오늘 또 한 번 거리에서 씁쓸한 스승의 날을 맞는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의 결과다. 촛불정부 시절의 여전한 풍경이다. 스승의 날 앞이라고, 대법원 앞에 선 해직교사 가슴에 카네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 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배우 조진웅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평전 일부를 낭독했다. 코로나19 사회연대기금 모금과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첫 주자로 나선 그는 “이 시대를 힘겹게 살
죽은 이를 추모하는 공간은 산 자의 일터다. 제사상을 앞에 두고 오늘의 경비 일지를 적는다. 드나드는 방문 차량을 기록하고 이중 주차를 관리한다. 빗자루 들고 여기저기를 쓸다가 재활용품 수거장에 들어 커다란 화분을 망치로 깨 자루에 담는다. 택배를 받는다. 따라붙는 카메라와 기자들의 질문을 견딘다. 주민 갑질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의 생전 일터에 향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 기자들 줄이 구불구불 길었다. 각종 위법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부회장은 9분여 기자회견 동안 세 번 고개를 숙였다. 그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질문은 받지 않았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헌법에 오래도록 선명한 문구였다. 그 시각 본관 앞 도로에 사람들이 누웠다. 상여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책 읽는 사람 모양을 한 동상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꽃이 피고 다 지도록 한자리에서 변함없다. 말이 없다. 누군가 거기 씌워 둔 마스크가 다만 시절을 말해 준다. 이마에 머리띠가, 또 그 아래 책에 올려 둔 손팻말이 오늘 길에 나선 사람들의 바람을 전한다. 그 옆 계단에 띄엄띄엄 선 사람들이 할 말을 풀기에 앞서 고개 숙였다. 참사
마지막 벚꽃 날리던 공원 한편 주차장에 무대가 섰고, 노란색 옷 입은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았다. 차분한 목소리 진행자가 앞자리 올라 언젠가의 기억을 들췄고 앉은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궜다. 때론 고개 들어 하늘쪽 먼 곳을 한참 살피기도 했다. 붉어진 눈을 달래느라 껌뻑껌뻑 눈꺼풀이 카메라 셔터처럼 바빴다. 손에 쥔 노란색 손수건이 점점 짙었다. 그 사이
개나리 꽃망울 터지듯 와글와글 피어나던 아이들 웃음꽃이 더는 광장에 없다. 솟구치는 분수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아이들 뒤꽁무니를 쫓다 그만 포기해 버린 엄마 아빠의 걱정 섞인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4월이면 시간표 따라 어김없던 일인데, 기약 없는 일이 됐다. 언젠가 잘게 부서진 물방울이 낮은 햇볕 머금어 무지개가 뜨면, 갖은 색깔 옷차림 아이들이 그 아
서울 강남역 사거리 높다란 빌딩 샛길. 스마트폰 들여다보느라 고개 숙인 사람들이 앞도 안 보고 복잡한 길을 잘도 걷는다. 저마다 희고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답답한 숨을 잘도 견딘다. 길가 온 데 나붙은 현수막이며 대형 전광판에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수칙이 빼곡했다. 난리 통에도 어김없는 봄볕에 꽃 틔운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마스크
계절은 움직임을 멈출 줄 몰라 훌쩍 봄인데, 그건 집 밖의 일이었다. 뜻밖의 손님처럼 불쑥 찾아든 봄기운이 반갑고도 낯설다. 일상을 곱씹는 시절이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뒹구는 뽀얀 얼굴 아이들 턱선이 둥글어 간다. 일터에 가야만 했던 엄마 아빠가 뾰족한 수를 찾느라 속이 타들어 간다. 문득 이것은 모두의 일이었으니 전화기 들어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3·28 사회대개혁·총선승리 민중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달 28일 예정한 대규모 집회를 취소했다. 대신 전국 동시다발 거점 행동, 1만명 인증샷 행동, 유튜브 생중계 등
긴급재난문자 통해 날아든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은 밥벌이 고된 길을 전한다. 여전히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창문도 없는 일터에 간다. 다닥다닥 붙어 ‘닭장’이라 불리는 곳에 앉아 종일 말을 한다. 큰돈 드는 각종 질환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는 안심 플랜을 상담한다. 말하기를, 일하기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바이러스는
생선은 대가리가 제일 맛있다고, 한겨울 맨손으로 다니면서도 손 시리지 않다고 아빠가 자주 말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종종 팔씨름하느라 잡아 본 아빠 손은 온통 거칠었다. 굳은살이 두꺼웠고,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졌다. 시멘트 독 때문이라고 엄마가 말해 줬다. 장갑 좀 끼라는 엄마 잔소리가 부족했던지, 아빠가 장갑 낀 걸 지금껏 본 적이
지상 74미터 높이였는데, 그는 어디 히말라야 고산에서나 입을 빨간색 커다란 패딩점퍼 차림이었다. 겨울이었고, 그곳엔 전기가 들지 않아 온열 매트 따위에 등을 지질 형편이 못 됐다. 늙은 해고자는 눈 덮인 산꼭대기처럼 하얗던 건물 꼭대기에 천막 치고 그저 오래 버티는 것으로 복직 싸움을 이어 갔다. 조난신호였다. 노조할 권리가 그곳 병원에서 자주 위태로웠다. 누군가에겐 목숨을 걸 일이었다. 마음 졸인 사람들이 그 아랫자리에서 곡기 끊는 것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것으로, 집회를 이어 가는 것으로 응답했다. 일단락됐다. 내려오는 사다리
큰 희생을 치른 싸움 앞에 내세운 요구라는 게 대개 약속과 법을 지키라거나 더는 죽이지 말라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 상식으로 통하는 뻔한 말을 하느라 사람들은 일터에서 잘리고, 길거리를 떠돌다 몸을 또 마음을 다치고, 종종 죽었다. 저기 10년의 싸움 끝 복직을 앞뒀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청와대 앞을 찾아가 굳은 표정으로 한 말이 또 약속 이행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