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은행 서울 서초지점에서 일하는 이종문(46)씨는 지난 27일 출근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은행에 다니는 부인 조정희(42)씨와 일곱 살 난 딸 지민이의 손을 잡고 여의도로 향했다. 세 식구는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에서 마련한 전세버스에 올랐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한 콘도로 갔다. 세 식구들의 ‘파업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민이네
뿔난 금융노동자들에게 진짜 뿔이 달렸다. 신입직원 임금삭감에, 갈수록 커져만 가는 노동강도, 정리해고의 쓰라린 기억을 되살리는 메가뱅크(초대형은행). 거기에 성과연봉제다 개별성과급제 등 언제 잘릴지 모르는 퇴출성제도까지…. 그래서 모였는데 진짜로 ‘뿔’을 달고 모였다. 금융노조가 금융노동자 총진군대회를 개최한 지난 22일 저녁 서울시청 광장. 광장을
세상에서 말 안 듣는 사람들 여기 다 모였다. 다음주 있을 기말고사를 팽개치고 왔다는 복학생, 우르르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노조원들, 학부형 손까지 붙들고 온 불량(?) 교사, 전날 미국 LA발 인천 영종도행 야간비행을 마쳐 시차적응도 안 됐다는 비행기 조종사, 앞으로 드라마 배역을 맡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런 여배우까지…. 지난 11일 자정을 넘긴
김은성 기자 ⓒ 매일노동뉴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희망퇴직자·무급휴직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쌍용차 투쟁이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려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 기억이 되살아날까 서로 만나는 것조차 피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웃었다. 투쟁 후 2년 만이었다. 문신 같던 투쟁조끼 대신 분홍색·하늘색 티셔츠 등의 옷을 입은 사람도 있
한동안 풀렸던 날씨가 영하 6도로 뚝 떨어진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근처. 도급업체 교체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63빌딩 주경시설환경노조 조합원들이 63빌딩을 둘러쌌다. 아침에 한 차례 집회를 한 뒤 오후 내내 추위에 떨며 1인 피케팅을 하던 중이었다. “너무 춥지요.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지난 설연휴에는 얼마나 추웠는데요
배 한 척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옷 한 벌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배를 만들기 위한 각종 자재가 입고되면, 옷감을 재단하듯이 배가 들어설 자리에 도안을 그리는 ‘심출’작업이 이어진다. 다음으로 ‘취부’작업이 진행된다. 배를 완성하기 전에 임시용접으로 틀을 만드는 것으로, 내부 부품 등을 장착하는 의장작업도 함께 이뤄진다. 옷을 완성하기 전
“서울에서는 버스기사가 진짜로 월급을 240만~250만원씩 받는다면서요?” 17일 오후 전주 시외버스터미널. 전북고속의 한 버스노동자가 천막농성장 앞에서 군불을 때다 다짜고짜 물었다. 그는 “전북고속 버스기사들은 그동안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며 “현재 최저임금에 미달한 금액이라도 돌려 달라는 체불임금 소송 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운
"아이들 5명을 키우다 보니 때를 놓쳤어요. 열심히 살아서 복 받았나 봐요.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결혼생활 24년 만에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옥순(45)씨는 연신 눈물을 글썽였다. 결혼 후 남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도 이번이 처음이다. 신랑 강명호(47)씨는 용접을 하는 건설노동자다. 강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웨딩드레스
"아, 미치겄네. 지금 집에 가면 마누라가 눈치 줄 텐데. 미안해 죽겄네. 이러다가 이번달도 20일 못 채우는 거 아녀." 지난 8일 오전 충남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아파트 공사현장. 눈이 흩뿌리기 시작하자 이성찬(56)씨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애타는 건설노동자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눈발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장난인 듯 얼마 못가
공항, 그것은 흥분과 설렘이었다. 10여년 전 처음 해외 배낭여행을 하겠다고 공항에 들어섰던 그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콩닥콩닥 두근두근….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쳤다. 미지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줄 첫 관문인 공항은 그렇게 가슴을 뛰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공항은 흥분과 설렘만의 공간일까. 수많은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공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작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벤츠 고급승용차에 각종 센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운전석에는 '더미'(인체모형)가 앉아 있다. 성능시험을 준비하는 관계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시험장에 견학 온 대학생 30여명이 침묵한 채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다. 시험을 총괄하는 김대업(38) 선임연구원은 “이골이 나서 이제 긴장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표
1분 1초의 긴장도 풀 수 없는 공간. 순간의 실수가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곳. 바로 병원이다. 위급한 환자들로 가득한 응급실은 한 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생명이 위독한 교통사고 환자나 의식을 잃은 음주환자라도 오면 응급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심박수는 끝도 없이 치솟는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X-ray) 촬영은
지난 9일 새벽 5시. 경기도 성남의 달동네 중 하나인 상대원동에 가랑비가 내렸다. 상대원동은 건설일용직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어둠이 깔린 골목은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기 힘들 만큼 비좁았다. 새벽 5시20분께 펌프카 기사 강경남(42)씨가 어두컴컴한 골목에 나타났다. 강씨는 펌프카가 있는 하남 차고지에 들르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펌프카는
지난달 22일 대법원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의 불법적인 파견고용 관행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았다. 한 달여 만인 이달 26일에는 서울중앙지법이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인 KTX관광레저로의 전적을 거부하다 해고된 전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해고자들은 철도공사 소속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캄캄한 터널 속에서 투쟁
채용담당자들, 수험생 에스코트부터 점심 대접까지 … 도급제 권하는 풍토 여전 대부분 업종이 고용사정이 썩 좋지 않지만 택시업계만은 예외다. 1년 365일 채용공고를 낸다. 승객은 점점 줄어드는데, 택시 면허대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다. 회사 경영상태는 나빠지고, 택시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악화된다. 구직자들이 외면할 수
지난 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원남동에 위치한 kdb생명 프라이드(pride)지점. 전화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텔레마케팅(TM)을 하는 곳이다. 텔레마케팅은 전문지식을 갖춘 상담원이 전화로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상품을 소개하거나 고객의 고충사항 처리와 시장조사 등을 수행하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프라이드지점의 전체 직원 64명 중 정규직은
“불법 아인 게 없습니더. 공기단축에 오줌 싸고 털 틈도 없서예. 사람은 구경도 몬하는 황량한 벌판 아입니까. 차가 좀만 늦게 가믄 현장소장이 차 빼라고 난리칩니더. 명색이 국책사업인데, 이래도 되는 깁니꺼?” 덤프노동자 김철수(46·가명)씨는 “낙동강을 바라보는 것조차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단가에 장시간 노동·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다 못해 그
“이것이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어진 KTX-Ⅱ입니다. 저기 뉴질랜드 마탕이전동차도 보이네요. 내년 말쯤 운행 예정인 경춘선 2층객차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창원시 대원동 현대로템(주) 창원공장. 약 66만제곱미터(20만평) 부지에 철도차량 제작공장이 공정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지난 76년 철도청에 납품한 1호선 전동차를 시작으로,
지난 15일 오후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광주성지순례에 나선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양성윤) 조합원들은 열사들이 안장돼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후 지부별로 흩어져 인근 구묘역으로 향했다. 이어 열사의 묘 앞에서 최근 정부가 공무원들
서울은 국토 면적의 0.28%에 불과하지만 국민 4명당 1명이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도시다. 지상 위로 9천킬로미터의 도로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지하에는 전동차가 다니는 철로부터 상·하수도관과 각종 전선·통신망이 빽빽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도시가스 배관은 400만 세대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동맥과 같다. 가 지난 7일 서울시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