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기, 남북의 치열한 체제경쟁 속에 북에서 남으로 온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귀순용사’라 불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사정은 달라졌다. 북한의 식량난으로 이탈주민이 급증한 뒤에는 그들은 이제 ‘탈북자’로 불린다. 북한이탈주민을 일컫는 ‘탈북자’. 그 부정적이고, 거부감을 주는 용어를 정부는 지난해부터 ‘새터민’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새터민은 ‘새로
1월12일 저녁, 울산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먹구름이 울상을 짓고 있다. 다음날 아침 처량한 빗방울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대지를 적시고, 공장은 축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다. 공장 정문을 지나 정규직노조 사무실 아래 2평 남짓 창고 형태의 작은 사무실이 나타난다.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조합’. 2기 집행부는 대의원선거 준비와 공장별 순회간담회 및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릿한 중저음의 말투. 안기호(42)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전 위원장은 2003년 5월, 현대자동차에 비정규직노조를 세운 주역이다. 4차례의 해고와 3번의 복직 및 잦은 수배, 구속 그리고 지난해 38일 동안의 단식농성이 말해주듯 그는 그 누구보다도 비타협적인 투쟁을 펼쳐 왔다. 지난해 9월15일, 7개월여의 감옥생활 끝
지난해 9월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조합 2기 집행부가 출범했다. 단독 입후보해 당선된 박현제(33) 위원장은 1,115명의 조합원 가운데 655명이 투표에 참여해 94.4%의 지지로 당선됐다. 높은 지지율보다는 투표 참여율 59%가 보여주듯 조합원들의 상태는 현재 가라앉아 있다. 조합원들의 탈퇴도 이어져, 잘 나갈 때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현재 상집간
지난해 8월1일자로 노조결성과 계약직 전환에 반대한 이유로 해고된 여주장례식장 노동자 2명이 새해 첫날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복직투쟁 6개월여만에 얻어낸 승리였다. 지난해 12월12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결정과 ‘복직’ 판결을 사측이 받아들인 것. 영세사업장인 탓에 수천만원에 이르는 체불임금에 대한 부담을 털고,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게 낫다
황우석 때문에 웃고, 황우석 때문에 울어야 했던 사람들.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스펙터클한 거짓말’의 충격은 컸다. 황우석 파동에 누구보다 ‘공황’상태에 빠진 이들은 바로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다. “이제 우리도 희망이 보입니다. 그 희망이 곧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오늘은 아프고 힘들지만 내일은 웃으며 살 수 있겠지요.”
10여개의 분회와 200여명의 조합원. 서울일반노조의 조직상황은 2001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지역 일반노조에 견줘 조직률이 떨어진다. 민주노총과 각 연맹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1천만명에 이르는 ‘공룡도시’ 서울.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상황은 여느 지역과 다를 바가 없다. 서울일반노조 소속 올림피아드학원분회의 운전
서울 중구청 맞은편 미디센터.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노동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다. 3층의 서울일반노조 사무실은 이주노조와 같은 공간을 쓰고 있다. “새롭게 위원장이 되셨다고요. 축하합니다.” “그럼 전 위원장께서는….” 23일 저녁 임재경(40) 서울일반노조 신임 위원장과 김형수(43) 부위원장(전 위원장)이 이주노조 간부들로부터
지난해 경남일반노조에서 지역명인 ‘경남’을 뗀 일반노조는 올 8월 현재 35개 사업장 1,100여명이 소속돼 있다. 자치단체, 휴게소 등 공공 분야가 22개 사업장으로 가장 많고, 레미콘 사업장이 8곳, 민간서비스 사업장이 3곳 등이다. 창원미화과, 마산의 기영레미콘, 통영, 신풍 레미콘, 진주의 우경산업, 신동, 해인레미콘 등이 신규로 가입했다.
“12명 전 조합원이 13일간 단식투쟁을 벌인 것은 노조투쟁에서 전무후무한 일 아니겠어요?” 강동화(41) 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에 대해 최근의 경상대 학생생활관 식당 해고자 복직투쟁을 주저 없이 꼽았다. 조합원 전원의 단식 결의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결의가 모아진 것은 아니었고, 복직판결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마산에서 진주를 거쳐 1시간여만에 ‘삼천포’로 빠졌다. 곁길로 빠진 것도, 일을 엉뚱하게 그르친 것도 아니었다. 기자의 목적지는 정확히 경남 사천시 삼천포 항이었다. 인구 11만여명의 아담한 중소도시. 16일 오후, 삼천포 버스터미널에 내려 곧장 항구로 향했다. 비릿한 냄새와 바람을 따라 걸으니, 2~3백여 척의 배들이 묶여 있는 포구가 시야로 들어온다.
지난해 말 170여명이 부산일반노조에 가입했던 한솔학습지 노동자들. 다달이 계약기간 만료를 들이대는 사측과 노조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부산지방법원에 의해 조합원은 거의 모두 탈퇴했다. 현재 해고자 몇몇이 남아 있는 상황. 환경미화와 정화 사업장에서도 개별적 징계 해고자들이 부단한 싸움을 벌였다. ▲ 12월2일부터 시작된 부산역 앞 시국농
업종이 다르고, 조합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만들기조차 힘들었던 중소영세비정규 사업장이 ‘지역일반노조’ 깃발 아래 하나가 되고 있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기치로 지난 2000년 4월 ‘부산지역일반노조’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전국 최초였다. 노동계 주변에서는 많은 의혹의 시선을 던졌다. “산별로 가야 하는데 희한한 놈(?)이 나왔네?” “또 하나
부산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세 정거장만 가면 ‘자갈치역’이 나온다. 바다 냄새를 따라 2~3분만 걸으면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 자갈치시장이 곧바로 펼쳐진다. 오가는 손님들로 늘 활기로 가득 차 있는 이곳. 좁은 골목 양쪽으로 즐비한 생선, 어패류 가게들. 연탄불에 꼼장어 익어가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펄펄 뛰는 생선들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서 오이소
‘보수’와 ‘자유’라는 주류, 비주류 언론의 틈바구니에서 노동(진보) 언론의 목소리는 언제나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되기 일쑤였다. 미군정과 군사정권 시기에는 공공연한 탄압으로 우익지의 대적이 어려웠을 만큼 주도권을 장악했던 노동 등 좌파언론이 좌초했다. 이후 자유주의 정권에서는 물적, 인적 한계로 인해 숱한 노동(진보) 언론들이 사라져갔다. 그들의 외롭고
“내 월급은 80만원 가량이다. 우리 월급날이 25일임을 감안하면 이제 곧 6개월째 체불이 된다. 집에다 손 벌려 얻어 쓴 돈과 동생에게 빌린 돈. 재정과 관련해선 할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노동일보의 발전과 미래, 노동자언론의 사명 공동대표제에서의 편집권독립 등을 염려한다.”(2002년 1월 우은식 전 노동일보 노조위원장) “1억여원 빌린
“버스운전을 10년 이상 했는데 의사가 척추가 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0미터 이상 걷는 것도 힘들지만 개인택시 받는 날을 기다리며 통증을 참고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안 해주겠지만 산재처리는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지하철공사 구역에서 차가 심하게 튕기면서 허리를 비끗했습니다. 운행을 마치고 파스 몇 장 붙였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산재처리
초라한 단칸 셋방, 4남매, 6남매가 한 이불에 엉겨 붙어 추위를 잘도 피했다. 형제들의 이불 한쪽 당기기 몸싸움은 치열했다. 우애를 강조하던 어머니는 형제들 사이의 다툼에는 빗자루 몽둥이를 들이댔다. 그런데도 형제들은 식사 때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허겁지겁 밥그릇을 비웠다. 마치 어미 새에게 먹이 더 달라고 입을 쫙 벌리던 아기 새들처럼.
‘해피투게더’ ‘크라잉게임’ ‘토탈 이클립스’ ‘프리스트’ ‘필라델피아’ ‘소년은 울지 않는다’ ‘바운드’ ‘두 여자의 사랑’ ‘결혼피로연’ 등등…. 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만큼이나 동성 사이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 다를 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도착’ ‘변태’ ‘정신장애’ ‘방탕한 성’ ‘도덕적 일탈’ ‘에이즈의 주범’ 등
850만 비정규직도 모자라 온 노동자를 비정규직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을 몰아내고 권리보장입법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결의가 뜨겁다. ‘특수고용’ 비정규 문제 해결을 위한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장. 이곳을 지키는 붙박이는 단연 학습지노조다. 그 흔한 노조 전임조차 한명 없는 학습지노조지만 간부들은 수업이 없는 날이나 수업을 마치고